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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둥 May 20. 2023

나는 왜 혼이 난 걸까?

그림책 <망태할아버지가 온다>를 읽고




망태할아버지는 정말 무서워.

말 안 듣는 아이를 잡아다 혼을 내 준대.

우는 아이는 입을 꿰매 버리고

떼쓰는 아이는 새장 속에 가둬버리고

밤늦도록 안 자는 아이는 올빼미로 만들어버린대.



망태할아버지는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네 이놈~!" 하고 나타나 아이를 잡아간다고 한다. 한때는 산타할아버지만큼이나 유명한 할아버지라는데 나는 이번 그림책으로 망태할아버지를 처음 접했다. 나의 어린 시절을 곰곰이 떠올려봐도 망태할아버지의 존재는 없었다. 그나마...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망태할아버지는 지금 내가 봐도 무서운데 아이들이 보면 얼마나 무서울까? 자꾸 거짓말하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말에 아이는 겁에 질린다. 엄마는 아이가 말을 듣는 것 같자 그 뒤로도 망태할아버지를 계속해서 소환한다. 그림책을 보는 내내 속으로 '어머니 제발 그만하세요!'를 외쳤다. 내 경험에 의하면 두려움을 통해 행동을 통제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식이 아니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망태할아버지는 없었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 회초리가 있었다. 나는 흔히 사랑의 매라고 불리는 형태의 훈육을 받으면서 자랐다. 어린이집에서 받아쓰기를 한 문제 틀릴 때마다 한 대씩 맞았고, 초등학생 때도 숙제를 하지 않거나 무언가 잘못을 하면 선생님께 등짝을 맞았다.


사랑의 매의 효과는 탁월했다. 나는 늘 기를 쓰고 받아쓰기를 100점을 맞으려고 했고, 숙제나 청소도 꼬박꼬박 열심히 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그저 혼이 날까 봐 무섭고, 맞을까 봐 무서웠을 뿐... 그러면서 해소되지 못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혼이 날 때마다 왜 그 행동을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로 자랐다. '왜'가 부재했던 것이다. 그래서 억울함이라는 감정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억울한 마음에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변호를 하면 두 배로 혼이 났다.


나는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이게 나쁜 행동이라면 어째서 나쁜 건지, 이 행동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싶었다. 당시의 나는 설명을 들어도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분명한 것은 "잘못했으니까 혼나는 거지." "그건 나쁜 행동이야."라는 말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아이를 훈육하면서 조곤조곤 이유를 들어 이야기하는 게 쉽지는 않다. 이러한 과정은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왜'는 때로는 무한반복 되기도 하니까...


그래서 어른들은 '망태할아버지'와 '사랑의 매'라는 쉬운 길을 택했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의 교육현장에서 체벌은 거의 없어졌지만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망태할아버지는 사라지지 않았다. 망태 할아버지 대신에 도깨비, 귀신, 경찰 아저씨 등으로 대체되어 여전히 쓰이고 있다고 한다. 경찰아저씨와 망태할아버지가 아이들을 잡으러 오기 전에 그들이 왜 와야하는지 이유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고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기다림'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매주 그림책 스터디를 함께하는 <노들리에> 작가들

아래 링크로 들어가면 같은 책을 읽고 쓴 <#노들리에> 작가님들의 글들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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