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돌아보니) 딱 1년 전에 쓴 글이네요. 1년 후인 요즘에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이 물러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현상을 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어떤 증권회사에서는 이 현상을 '촛불혁명'에 비유했던데 이 해석에 동의하는 분들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뉴스에서는 박창진 사무장의 얼굴을 비추었습니다. 개인의 사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한국 사회의 너무나 아픈 곳까지 드러낸,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느새 투사가 되어버린 그의 얼굴에는 제 수준으로는 차마 읽지 못하는 많은 표정들이 숨어있는 것 같았습니다.
(2018.3.12)‘삶은 우연의 연속’ 이라는 말은 저로서는 믿기 힘들지만 누군가에게는 사실인 것 같습니다.
저는 휴대폰이 싫습니다. 수시로 뉴스를 보는 게 싫습니다. 저보다 더 부지런한 기자들을 보는 것도 힘들고, 좋은 뉴스도 없고, 거기에 감정이입 하는 것도 힘들고.
그런데 방금 본 기사는 좀 놀랍네요.
박창진 사무장이 정의당 의원들의 환영을 받으며 인천공항으로 출근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밝게 웃는 그의 모습 뒤로 미소 짓고 있는 대한항공 유니폼의 스튜어디스도 눈에 띄네요.(하단 기사 참고)
http://news.heraldcorp.com/view.php?ud=20180511000845
사실은 박 사무장이 이길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작년 11월 추웠을 때 그가 기자회견을 연 적이 있어서 갔었는데.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고(그럴 수밖에 없었던 자리), 그 회견을 전후로 그가 한 인터뷰 기사를 보면 그동안 자살시도를 했다는 내용도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꿋꿋이 그 회사를 다니는 그를 보는 것 자체가 힘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기사 한 줄 쓴다고 견고한 이 사회를 바꾸기는커녕 실금 하나 그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요.
‘땅콩회항’의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이 대한항공을 상대로 부당노동행위 관련 소송을 제기했다. 박 사무장과 호루라기재단 측은 “관리자로 일하던 사람을 정당한 이유없이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시키는 대한항공의 행위는 부당한 징계행위”라고 주장했다. 박 사무장은 “팀장이라는 자리를 다시 갖는다는 표면적인 이유보다 상실된 권리를 찾겠다”고 소송의 이유를 밝혔다.(아시아투데이, 2017년 11월20일)
http://www.asiatoday.co.kr/view.php?key=20171120010010650
그런 그가 머리 종양 수술을 받고 밝은 모습으로 웃으면서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가면까지 쓰고 광장에 나와 시위하는 대한항공 직원들을 보며 서글픈 생각도 들었고, 박 사무장 입장에서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괴로웠던 4년의 시간을 어쩌면 ‘바른 길을 걸어왔다’는 것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삶은 우연인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필연인 것 같기도 합니다.
땅콩회항 때, 근본적인 문제가 바뀌지 않아 같은 사건이 반복된 것은 필연처럼 느껴지고,
그렇다고 불과 4년 만에 더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은 우연처럼 느껴집니다.
소노 아야코라는 일본 유명 소설가가 쓴 에세이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생은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희망을 걸고 기다려야 한다.’
이 사람은 어릴 때 엄마가 동반자살 시도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미수에 그치고 살았지만, 그런 사건을 겪은 사람이 저런 이야기를 하니. 믿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이어지는 삶은 갯벌을 걷는 것처럼 푹푹 꺼지는 것 같고 무겁지만, 계속 걸으면 모래 사장 나오려나요. 소노 아야코는 그렇다고 합니다. 그리고 박 사무장도 이런 진리를 몸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