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어진 상처, 벌어진 관계
추운 겨울을 가장 먼저 느끼는 신체가 있다면 나에게는 손이다. 수족냉증은 계절과 상관없이 찾아오지만 양말에 싸여 있는 발에 비해서 노출되어 분주한 손은 주변 온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모양이다. 땀이 나거나 따뜻하게 데워져 윤기가 날 때는 쭈글거리는 손등조차 젊어 보이기도 하고 예뻐 보이기도 하다. 그러다가 손바닥끼리 맞닿았을 때 황태포를 만지는 듯한 이질감이 들면 어김없이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겨울이 되면 손가락 지문은 어디에도 소용이 없다. 불편하고 불만스러웠다. 몇 번을 해도 인식되지 않는 지문 때문에 사회에서 거부당하는 거 같았기 때문이다. 사계절을 40번 넘게 반복해서 겪고 나서야 나의 생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게 되었다. 이제는 날씨가 추워지면 휴대폰 지문 인식 방식은 과감히 포기하고 패턴이나 비밀번호로 바꾸어 버린다. 집착하지 않으니 또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으며 그렇게 살아진다.
건조해진 손은 상처에 취약하다. 작은 상처도 쉽게 갈라지고 잘 붙지 않는다. 그래서 겨울에는 손톱 바로 밑의 거스러미도 절대 손으로 뜯어 내지 않으려고 한다. 혹시나 손톱에 피부가 긁힐까 봐 더욱 조심한다. 손톱깎이로 손톱을 최대한 짧고 단정하게 하고 지나치게 팔랑거리는 거스러미 정도만 도구로 정리한다. 그리고 핸드크림도 수시로 덧발라서 각질을 잠재우고 살결을 보드랍게 감싸준다. 하지만 이런 노력 또한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다. 아이들의 방학이 시작되고 한 끼 식사만 늘어났을 뿐인데 손에는 계속 물이 묻어 있다. 좀 전에 발랐던 핸드크림도 씻겨 내려갔다. 잠시 짬이 나서 앉아서 쉴 때에는 손도 움직이기 싫어서 가만히 내려놓는다. 손에 묻어 있던 물이 말라가면서 젖은 수건이 거칠게 마르는 것처럼 손의 건조함은 배가 되었다.
다시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할 때였다. 오른쪽 엄지 손가락에 통증이 느껴져 손을 들어 가만히 보았다. 손톱을 너무 짧게 깎았나, 당근 썰다가 칼에 스쳤나, 거스러미가 뜯겼나, 작은 통증에도 여러 상황을 고려하며 상처를 찾아보았다. 손톱이 가리고 있는 살이 갈라져 붉은 표면이 보였다. 손톱을 깎았기 때문에 밖으로 보이는 살이었는데 핸드크림이 닿지 않을 정도의 굴곡진 곳이다. 피가 나고 있지는 않아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지금은 겨울이다. 작게 생긴 상처도 잘 아물지 않는 겨울. 게다가 주로 오른손이 솔선수범하는 탓에 작은 상처는 계속 건드려졌다. 보고 있지 않아도 매 순간마다 통증이 느껴졌다. 집에 있는 비상약 통에서 찾은 바셀린, 후시딘, 리도멕스를 번갈아 가면서 발랐다. 연고들이 발라졌기보다는 상처 위에 얹혀 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수시로 사용하는 물에 의해 임시방편들은 씻겨 내려갔다. 통증의 강도는 점점 세졌다. 잘 때는 손에 물을 묻힐 일이 없으니 연고를 발라 밴드를 붙여놓고 연고가 상처 안으로 잘 스며들기를 바랐다. 밴드의 역할은 연고의 흡수를 도와주는 것도 아닌데 신비한 효염을 바라고 있는 모습이 아둔하다.
작은 상처라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았는데 계속 신경이 쓰였다. 캡슐 알약 포장을 오른손 엄지로 눌러야 하는데 통증이 세져서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자동차 키를 눌러서 차를 열고 닫아야 하는데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왼손을 사용하긴 했지만 익숙하지 않아 부자연스러워 애쓰는 모습이 한심해졌다. 벌어진 상처 때문에 나의 삶의 질은 확실히 낮아졌다.
요즘은 상처에 붙이는 밴드도 사이즈 별로 다양하게 나오는 세상이다. 혹시 내 상처에 알맞은 밴드도 있지 않을까 기대감이 생겼다. 흔하고 작은 상처이어서, 그렇기 때문에 빨리 아물기를 바랐다. 약사에게 물었다.
"여기 손톱 아래 상처가 났는데 붙일 수 있는 밴드나 약 없을까요? "
"그곳은 밴드 두 겹을 덧대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아, 네.. 그런 방법밖에 없군요. 여기 상처가 생각보다 아프네요. "
"그렇죠? 맞아요. 그런 상처가 아파요."
약사가 알려준 밴드를 덧대는 방법은 취하지 않았다. 밴드는 상처를 가려줄 뿐 어떠한 효능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견 가능한 앞으로의 일을 보자면, 벌어진 사이에는 새로운 살이 채워지고 자라나는 손톱 뒤로 숨어버릴 것이다. 날이 따뜻해지면 손은 다시 적당한 체온으로 회복하고 윤기가 돌 것이다. 상처를 잊고 살다가 겨울이 되기 전에 보습, 보호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 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실수로 혹은 케어가 닿지 않는 곳에서 비슷한 상처로 다시금 괴로워질 수도 있다. 그런 일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는 사소한 일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불만스럽더라도 집착하지 않는다. 다른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렇게 또 살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