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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 찾기

나를 알아가는 여정

by 뚜샷뜨아

나의 소중한 글쓰기 모임 "마을 글방"의 이번 달의 글쓰기 주제는 박완서 산문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고 에세이 한편 쓰기이다. 글쓰기 숙제 덕분에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워낙 유명한 작가님이지만 수많은 수상 이력 때문에 오히려 난이도가 높아 읽기 어려울까 봐 걱정이 앞섰다. 에세이집을 읽고 나서 쓸데없는 우려였음을 알았다. 작가님이 생전에 쓰신 수많은 산문들 중에 제목으로 채택된 이 문구가 에세이 전체를 대변해 주고 있었다. 작가님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않고 솔직하고 과감하게, 가볍지 않지만 무겁지도 않게 편안한 문체로 에세이를 쓰셨다. 그리고 모래알 개수만큼이나 성실하게 많이 쓰셨다. 사소해 보이는 일상에서 진실을 발견하는 작업을 글로 남기는 과정이 에세이임을 새삼 깨닫는다.


내게도 사소해 보여 무심히 흘려보냈던 진실들이 있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씩 작은 아들을 데리고 어린이 천문대에 다닌다. 네 살 터울의 큰 아들을 데리고 2년 동안 다녔던 천문대를 작은 아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벌써 4년째다. 아이는 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우주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아한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천체 망원경으로 성운까지 볼 수 있다며 깜깜하기만 한 밤하늘 저 너머에 빛을 내는 존재를 찾기를 열망한다. 그러나 천문대에 가는 날 별을 볼 수 있는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먼지가 많은 봄,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을 지나야 높고 쾌청한 가을 하늘을 겨우 볼 수 있다. 아이는 미친 듯 뛰어다니는 강아지처럼 겨울눈을 좋아하지만 천문대에 가는 날 만큼은 눈구름이 바람에 실려 가길 바라기도 한다. 1년 열두 달 중에 그나마 추운 날에 별이 잘 보인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엄마인 나는 별 볼일 없는 일상 중 특별한 기대를 하게 만드는 날을 아이에게 선물하듯 사계절 내내 부지런히 천문대에 데리고 다닌다.


나는 아이의 수업이 끝날 때까지 무려 두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천문대에서 보호자를 배려해 주어 다행히 1층에 앉아서 기다릴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아이가 별을 보는 시간 동안 나는 밀린 숙제 하듯 개인적인 공부도 하고, 여유롭게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같이 기다리는 친구 엄마가 있는 날에는 수다를 나눌 기회도 있다.


어느 해 겨울날 나는 사주풀이에 관심이 생겼다. 갑자기 예상치 않은 이사를 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달라지는 기류를 느끼면서였다. 내가 타고난 기질이 나의 선택에 영향을 주어 삶의 방향이나 결과가 결국 정해진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분명 여러 선택 사항이 있었을 텐데 내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 있지 않았을까 질문이 생겼다. 사주풀이는 통계학이라고 하니 객관적인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내 사주를 직접 풀어 보고 싶어졌다. 많은 유튜브와 책들을 살펴보면서 사주팔자에 적힌 글자들을 해석해 보았다. 그 와중에 천문대 친구 엄마와 최근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사주풀이도 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내 사주를 연구할 때는 자꾸 주관이 개입되니 방해가 되어 풀이를 명쾌하게 할 수 없었지만, 다른 사람의 사주에 대해서는 좀 더 객관적으로 아는 것만큼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만 나의 지식이 얕아 조언이나 구체적인 예측을 해줄 수 없으니 그녀에게 감안하고 들어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녀는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 사주팔자에 적혀있는 글자만 보고 자신의 기질을 알아내고 삶에서 추구하는 방향을 설명해 내는 것만으로도 신기해하고 흥미로워했다. 순간 내가 직관력이 좋은 점술가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흥분을 느꼈는데 아는 것 이상으로 말할 수 없음을 알고 입을 닫았다. 오히려 그녀가 당장 겪고 있는 힘든 문제에 대해 어떻게 하면 되겠는지 알겠다며 스스로 정리를 하는 모습에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확신을 하지 못했을 뿐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속의 불안도 모습을 달리하니 자신에게 점점 확신이 없어진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타로나 사주를 보러 가고 싶어지는 충동을 느낀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고 미래도 알려주면 답답한 마음이 해소가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곳은 어디에도 없다. 결국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내 마음속에 있고,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라는 걸 머리로 알고 있지 않은가. 엉키고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아는 것이 필요하다. 사주팔자를 공부하는 것은 결국 나를 알고자 함이다.


내가 어릴 적에 살던 단층집에는 옥상이 있어 하늘을 자주 볼 수 있었다. 노을 지는 하늘을 보고 있다 보면 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솔솔 올라와서 허기를 느낀다. 해가 완전히 떨어져서 안 보이면 주위가 차츰 어둑해진다. 저녁 빛이 어스름해질 때 시야가 좁아지면서 불편하고 무서워져서 별을 보기도 전에 집 안으로 쪼르르 들어가기 바쁘다. 내게도 별 이야기를 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밤이 좀 덜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잘 보이는 것처럼 우리는 하늘 아래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 밖 세상에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뭐든 알고 대하면 무서울 것이 없다.


별을 보는 아이와 사주를 보는 엄마. 천문학과 명리학은 많이 닮아 있다. 둘 다 하늘에 떠 있는 별에서부터 시작되는 배움이기 때문이다. 내 아이가 퍽퍽한 세상살이가 갑갑하고 힘들어질 때 깜깜해진 하늘에서 언제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아이가 자라면서 별 보다 사주 볼 일이 더 많아지겠지만, 별을 보던 순수한 마음을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바란다.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에는 생각보다 긴 시간이 필요하다. 죽어서 별이 되었다는 신화 같은 이야기처럼 스스로 빛이 나는 삶을 살게 되길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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