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기업
국 내외의 크고 작은 회사 생활을 접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 가장 빈번하게 듣는 질문이다.
이 전에는 한국 회사랑 외국 회사 가운데 어디가 더 좋으냐는 물음이 잦았었다.
답변에 앞서 먼저 질문자의 의도를 먼저 살핀다. 소득일까? 스트레스일까? 자유로움? 사회적 평가?
매번 대답할 때마다 비교 대상의 디멘죤(dimension)이 다르다고 둘러대지만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다 보니 어느새 그럴싸한 정답이 만들어진다.
먼저 사회 곧 회사와 학교 즉 대학의 경우다. 우선 양측의 질문이 다르다. 회사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 엄청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좋겠냐는 전제고 학교에만 있던 사람들은 그 좋은 대우(주로 금전적인)와 다이내믹(좋게 말해서 성취감)을 포기하고 왜 옮기냐는 거다.
단언컨대 어느 방향이 됐건 지금이 좋은데도 막무가내로 뿌리치고 다른 곳으로 옮기는 사람은 드물다. 나름 그럴싸하게 자신의 이동을 포장하지만 내 보기엔 ‘아니 올 시다.’다.
대학과 기업 비교의 축약은 관계의 주도권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회사 생활 경험자들은 공감하겠지만 일은 아무리 많고 힘들어도 견디고 해낼 수 있다. 문제는 인간관계다. 상사와 동료와 아랫사람과 거래처와, 드나드는 관공서와 모두가 관계의 연속이요 갈등이다.. 갑의 입장에서는 다를 거 아니냐고 누군가 쉽게 반문하지만, 세상에 누가 영원한 갑일까? 대통령? 상사? 공무원? 발주권자? 아니, 그들도 누군가에겐 반드시 을이다.
대학도 인간 사회다.
관계와 갈등은 있게 마련이다. 대신, 어느 정도의 자기 선택권이란 게 있다. 크고 작은 보직에서부터 학회의 간부 자리 대외 업무와 직책 등등은 본인이 싫으면 안 할 권리가 있다. 근자에 와서는 각종 평가에서부터 페미니즘, 소비자 주권주의 등 예전과는 다르다고 하지만 바깥 사회, 기업의 그것과는 비할 바가 못 된다. 하지만 양쪽 다 경험해 보기 전에는 굳이 관계로 인한 스트레스의 경중을 아무리 설명해도 납득시키기 어렵다. 해서 찾아낸 답이 차원이 다르다는 정도다. 이를테면 오이와 바나나 중에서 무얼 더 좋으냐 (어느 것이 더 달콤하냐가 아닌)처럼 야채와 과일 같은 이종간 비교란 대답이다.
그러나 최근에 벌어지는 극심한 세 가지 변화, 흔히 디지털 변화(Digital Transformation)로 표현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로의 진입과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팬데믹에 의한 비대면 사회의 연속, 그리고 이 둘을 아우르는 인구와 출산율 극감 등은 보다 근본적인 고민을 불러온다.
앞으로 헤쳐 나갈 변화의 격량은 전대미문이다.
이제껏 대학들은 정부의 간섭을 받아왔지만 동시에 비호의 혜택도 누려왔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기댈 수 없다. 공권력도 의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글쎄?
어느 쪽의 면역력이 더 센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