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의심의 시작은 생각으로부터.
아니, 근데 잘 몰라서 그러는데 뼈가 없어도 엑스레이에 그렇게 선명하게 찍히나요? 영화 <메기>가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드는 리뷰. 스포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믿고 안 믿고는 생각보다 주관적인 판단이다. 인간은 입체적이어서 나의 엄마와 계모임에서의 최여사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자친구가 전 여자친구를 때렸다고 해도 나는 아직 안 때렸다는 사실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를 때렸다는 그 사실 자체에 정이 떨어지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나중에 나에게도 손을 올리면 그땐 정말 끝이다, 라는 미래계획적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모든 믿음과 의심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판단 하에 이루어지며, 그 판단은 어느 영화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판단들이 왜 무서우며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깊은 관계를 맺어본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이 믿음과 의심은 한순간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라는 삽으로 꽤 오랜 시간 동안 '삽질'을 해야만 생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 이거 이상하다" 싶을 때는 늦었을 수도 있다. 삽질을 오래 한 만큼 구덩이도 깊어졌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관계 사이에 믿음과 의심이 들어있는 'think hole'이 생기는 것이다.
'메기 효과'라는 말이 있다. 뛰어난 경쟁자의 존재가 다른 경쟁자들의 역량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일컫는 말이다. 영화 <메기>의 메기 효과는 앞서 말한 것과는 좀 다르다. 이 영화의 메기 효과는 '메기가 튀어 오르면 싱크홀이 생긴다'는 뜻이다. 메기는 많은 것을 알고 있지만 말하지 못한다. 대신 싱크홀이 생기기 전에 튀어 오른다.
영화 속에서는 믿음과 의심이 씨실과 날실처럼 얽혀있다. 마치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처럼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다가도 극 중 인물들의 관계성을 확장시킨다. 무단결근한 직장 동료가 정말 아프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모두를 믿기로 하는 윤영(이주영)과 경진(문소리)이지만 결국 옆구리에 총알이 박힌 환자를 신고한다. 총알을 본 순간 생각의 삽질은 가속도가 붙어 아주 커다란 의심의 싱크홀을 만들게 되었다. 결국 윤영과 경진은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신고를 한 것이다.
성원(구교환)의 경우도 그렇다. 동료의 발가락에 끼워진 은반지를 보고 자신이 잃어버린 반지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그 동료를 의심하지 않고는 못 베기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성원의 의심은 빗나간 화살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어, 이거 이상하다" 싶을 때는 늦은 것이다.
메기 아빠(권해효)가 말한다. 메기가 뛰어올랐으므로 지진이 일어날 거라고. 정말 싱크홀이 생겼고 성원은 일자리를 얻었다. 아마 그 싱크홀이 생기기 전에 누군가는 믿음을 잃었고, 누군가는 의심을 확신했을 것이다. 윤영이 성원에게 전 여자친구를 때렸냐고 물었을 때, 성원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 순간 메기는 튀어 오르고 성원은 싱크홀에 빠진다. 윤영이 알게 모르게 파놨던 의심의 구덩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성원의 "그렇다"라는 대답에 모든 것이 확실시됐다. 도시 곳곳에 생긴 싱크홀들은 의심의 증거이며 믿음의 상실이다. 우리는 지금도 믿음과 의심의 구덩이 파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구덩이에서 빠져나와야 할 타이밍을 생각하지도 않은 채 계속 삽질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다. 이 곳, 이 사람, 지금은 다르겠지라는 믿음과 저 곳, 저 사람, 나중은 다르겠지라는 의심으로 굴러간다. 앞으로도 싱크홀은 계속 생길 것이다. 우리는 믿어야만 살아가고 의심해야만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에 싱크홀이 너무 많이 생기면 기반이 약해져서 어떤 건물도 들어설 수 없고, 오래된 산마저도 무너질 것이다. 부디 우리 마음속에 숨어있는 의심이 모두 다 맞지 않길. 많은 것들이 해프닝으로 지나가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