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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Feb 12. 2021

중2병 대신 우울증이 찾아오다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 배신감

 내가 왜 우울증에 걸렸을까, 그에 관한 두 번째 기억은 중학교 2학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공부하는 재능을 타고났다. 아주 어릴 때부터 또래 친구들보다 공부를 잘했다. 남들보다 적은 노력을 들이고도 높은 성적을 얻었다.


 부모님의 교육방식은 방임주의였다. 내가 무얼 하든 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들놈이 시험 전날에 컴퓨터 게임을 하고 있어도 아무 말 없었다. 그 분위기가 좋았다. 공부에 대한 압박은 하나도 느끼지 않고 높은 성취를 해내었다. 학원 하나 다니지 않고 전교 1, 2등을 다투었다.


 부모님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거니 하며 내 교육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놈이 시험을 보는 족족 좋은 성적을 받아오고, 과학고에 자기 제자를 입학시키려는 선생님들이 어떤 귀띔이라도 주었는지, 어느 순간 부모님에게 욕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나를 좋은 학교에 보내려는 욕심. 아빠는 서울에 있는 학원에 나를 보냈다. 지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어서 공짜로 다닐 수 있다고, 여기서 열심히 공부하면 영재고에 갈 수 있다고.


 물론 강제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은 내 의견을 존중하였다. 몇 번이고 내게 물어봤다. 학원에 다니고 싶냐고. 영재고에 가고 싶냐고. 나는 답했다. 그렇다고. 학원에 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때의 나는 주위 어른들의 기대를, 모범생이라는 이미지를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속으로는 정말 가기 싫었지만, 입으로는 알겠다고 말했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단어가 떠올랐다.




 부모님과 함께 학원에 찾아갔다. 내 기억 속에 학원이라곤 유치원생 시절 다닌 피아노 학원이 고작이었다. 건물 두 층이나 차지한 학원은 두려울 정도로 커다랬다. 원장 선생님과 만나서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 시작과 동시에 원장님은 질문했다. 선행학습은 어디까지 했냐고. 아무것도 안 했다고 답했다. 원장님이 엄청 놀랐다. 중3 과정도 안 했다고요? 그 순수한 놀라움의 눈빛과 말투가 나를 멍청한 개구리로 만들었다. 우물 안에서는 항상 1등만 하던 나는 우물 밖을 벗어나자 기본도 갖추지 못한, 그래서 일대일 수업이 필요할 만큼 시급한 열등아가 되었다.


 학원은 버스를 타고 1시간 30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멀리 돌아가는 버스는 쌍문역 근처에 나를 떨어뜨렸다. 서울에 혼자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온통 낯선 것밖에 없었다. 도로에는 자동차가 길거리에는 사람이 득실거렸다. 보도블록에 발걸음이 닿는 느낌조차 어색했다.


 학원 수업은 충격이었다. 하나도 이해가 안 되었다. 미적분, 기하학, 대수학, 정수론, 유체역학, 양적 관계, 가계도 분석 따위의 고등학교 수준 내용들이 들이닥쳤다. 다른 애들은 이걸 대체 어떻게 이해하는 거지?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똑같은 수업을 몇 년 동안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었다고 한다. 초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같은 반에 초등학교 6학년도 있었다. 그 친구가 나보다 미적분 문제를 잘 풀었다.


 집과 학원을 오가는 버스 안에서 졸면서 스마트폰으로 인강을 보고, 아는 사람 한 명도 없는 그곳에서 가장 덜떨어진 인간이 되어 이해 못 할 수업을 듣고, 열한 시가 훌쩍 넘는 어두운 밤에 집에 돌아오는 하루가 반복되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아파트 정자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웠다. 눈에 띄게 힘들어하는 나를 걱정해주는 엄마를 마주하는 게 무섭고, 죄송스럽고,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는 나를 믿고 나를 위해 애써주는데, 정작 나는 수업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어하기만 하는구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번 피어오른 생각은 쉽게 꺼지지 않았다. 밤마다 울었다. 침대에 누우면 눈물이 흘렀다. 잠을 못 잤다. 내 생에 최악의 불면증이었다. 방 안에 있던 칼과 가위를 모두 거실로 치웠다. 갑자기 내가 손목을 그을 것 같아서 두려웠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심각하게 망가졌다. 이대로면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학원에 등록하기 전 엄마는 내게 말했다. 언제든지 힘들면 말하라고. 언제든지 네가 원하면 그만둘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저 끔찍한 시간을 삼 개월이나 버틴 것도 엄마의 약속 때문이었다.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그러니 내가 버틸 수 있을 때까지는 최선을 다하자. 나는 엄마를 믿었다. 아빠에게는 이미 신뢰를 잃은 지 오래였지만, 엄마만은 내 편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고민 끝에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어느 날 저녁 부모님에게 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겠다고 말했다. 공부가 힘들어도 너무 힘드니, 학원을 그만둘 거라고, 영재고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내 말을 흔쾌히 들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내게 돌아온 엄마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안 된다고. 조금만 더 다니라고. 나는 반발했다. 언제든 그만둬도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그러자 엄마가 냉정하게 말했다.


 지금 네가 하는 건 일방적인 통보잖아.
 학원을 그만둘 거면 엄마 아빠랑 상의를 해야지.
 왜 너 혼자 멋대로 결정하고 통보를 해버리니.


 이 순간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당신의 약속 하나만 믿었었는데.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를 타박하는 당신의 모습이 당신을 향한 나의 믿음을 산산이 깨부쉈다. 며칠을 눈물을 흘리며 자살충동을 참아가며 살기 위해 택한 내 결정이, 당신에게는 일방적이고 반항적인 통보로 느껴졌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다.


 이후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는 한숨을 쉬었고, 아빠는 욕을 하며 현관문을 박차고 나갔다. 다음 날, 나는 의자에 앉아 펑펑 울며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울분을 터뜨렸다. 부모님은 바닥에 앉아서 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평소 감정 표현이 드물던 아들이 울분을 쏟아내는 모습이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이후 어찌어찌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원장님과 마지막 상담을 했다. 원장님은 나를 붙잡으려고 온갖 칭찬과 회유를 했다. 그러나 나는 원장님의 말은 제대로 듣지도 않고 싫어요, 하기 싫어요, 그만둘래요 이 세 문장만 반복해서 말했다. 그렇게 나는 지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때 얻은 우울한 감정이 이토록 오래 지속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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