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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비단 Jan 14. 2021

당연히 사람은 모두 죽고 싶어 하는 줄 알았는데

마이 리틀 블루 0화. 나의 작은 우울

 평범한 사람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이 글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단 한 번도?


 주변 사람에게 힘들다고 말했을 때 항상 돌아오던 말이 있다. 모두가 힘들다고. 너만 힘들어하는 거 아니라고. 너보다 힘든 사람 이 세상에 수도 없이 많다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아,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힘들어하나 보다. 모두들 죽고 싶은데 억지로 밝은 척 힘들지 않은 척 살아가는 거구나. 그래서 나는 유난 떨지 않기로 했다. 모두가 나처럼, 혹은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세상에서 나 따위가 힘든 기색을 내보이는 것은 건방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힘들어하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이 말이 사실인지 주변 사람에게 물었다. 사람들은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당연하지.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딨어? 넌 그런 적 있어?”


 배신감이 느껴졌다. 모두가 다 나처럼 힘들다면서.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다면서. 그렇게 내 힘듦을 후려치고 아무것도 아닌 양 굴었으면서. 이제 와서 다 거짓말이었다니.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내 마음을, 내 감정을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나 따위가 감히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거냐고 꾸짖었는데. 다 거짓말이었다니….




 나는 그때서야 내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평범한 사람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말은, 내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이 결론에 이르러서야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릴 적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아 함께 자라온 나의 작은 우울을 열아홉 살이 되어서야 발견하였다. 적어도 나는 너를 돌봐줬어야 했는데, 세상에 속아 이 작은 친구를 여태껏 외면해왔다.


 이 일련의 글은 내가 나의 우울과 함께 살아온 삶의 기록이다. 나는 이 작은 친구에게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마이 리틀 블루. 수줍음과 두려움이 많은 이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 8월 17일 금요일, 일기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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