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은 지배하지 않는다 _ swords 5번 나의 패턴을 이해하기
인류는 원래 태음력을 살았고, 농사를 위한 절기를 더해서 보완한 태음태양력을 조선시대부터 한국에서 쓰기 시작했다. 엄밀하게 진짜 새해는 음력의 1월 1일이다. 매년 변하는 자연의 생태를 반영하기에 적절했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생태' 자체가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으니.. 뭐가 더 정답인지는 잘 모르겠다.
몸의 기억과 문화의 감각으로 새해는 음력 1월 1일이라 여긴다. 그런 의미에서 새해를 맞이하고 정월대보름도 다가오는 요즘 '나의 꼴'에 관해서 얘기해보려 한다.
알지 못한 상태로 긴시간 우울증인 시기가 있었다. 점점 심해지고 있을 무렵 우연인지 필연인지 예술치료 공부를 하고 일하는 공간에서 명상과 요가를 하면서 지냈다. 가장 격변기에는 신체 이상 반응도 생기고 면역체계가 잘못되어 구안와사(눈,입 마비)가 강림하여 3개월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어쩌다 그 지경까지 스스로를 몰아갔을까.
면역 관련 질환이 등장한다는 것은 몸이 더 이상 버티지 않겠다 파업선언을 한 것이다.
오래된 마음의 상처를 억지로 괜찮다고 설득하면서 외부와의 연결을 끊어버린 결과였다고 지금에서야 진단을 한다. 물론 그때 좋은 사람들 많았고 지금도 그들은 내게 참 고맙고 좋은 사람이다. 문제는 나였다. 늘 밀어내고 의심하고 기준을 높이 둬서 평가를 했다. 게다가 그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가 없고, 나의 특수한 개인 경험을 하지 않은 이들의 얘기는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타인에게 냉정한 만큼 나 개인에게는 어땠을까. 어찌나 가혹하고 잔인한지. 매일 벌주는 심정이었다. 능숙하게 해내지 못하거나 잘 이해하지 못한 채 아는 척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늘 패배했고 세상에서 내가 제일 싫었다. 세상이 미웠고 사람들이 싫었다. 뭔가 잘못 태어난 것만 같아서 죽지 못해 산다는 심정이었다.
그럼에도 잘난 척은 하고 좋은 사람인 척은 해야 하니 내외부가 다 뒤틀려서 좋을 때 좋다 못하고 우울할 때 웃었다. 술을 먹으면 "내 인생은 시작이 번들입니다. 아들 필요한 부모님이 나를 낳았죠. 할머니가 딸인 나를 보고 실망해서 탄식한 '이놈아'가 아명입니다." 타령이었다. 번들 같은 인생인데 좋을 거 뭐 있겠냐는 자기비하. 다음날 제일 먼저 출근해서 청소하는 성실 그자체, 열심히 일하면서 논쟁과 격론이 생기면 피하지 않았다. 밤에 술 먹으면 또 번들인생 하소연. 다른 출구가 없는 성실과 열정을 일에다 쏟고, 그 뒤의 허무함은 술과 담배로 달랬다. 인정 욕구와 자기 비하, 연민의 덫에 걸려 있었다. 선배들에게 의존했지만 그들과의 격한 싸움과 결별은 인간 불신을 더 부추겼고 다시 자기혐오로 이어졌다.
무슨 용기였을까. 내가 안전하다 느낀 관계와 일의 틀에서 빼냈다. 몸이 있는 위치를 완전히 바꿨다. 일의 목적, 주제도 완전히 달랐다. 그때부터였다. 나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나의 꼴을 살피기 시작했다. 온전히 혼자 일을 책임지고 새로운 관계를 맺었다. 아이러니하게 겨우 사람들과 관계 맺고 환대받는 안정감을 느낄 무렵 몸이 아팠다. 그동안의 스트레스와 발작 같은 우울증이 심하게 등장했고 결국 자리 보전하고 나서야 몸을 보살피며 과거를 마주했다.
더 이상 타인에게 힘듦을 호소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마음의 내상이 완치가 된 것은 아니었다. 몸에 상처가 나 진물이 났다 딱지가 앉고 새 피부 돋는 속도보다 마음 상처는 끝없는 실패를 겪어야 비로소 딱지가 앉는다. 심장의 근육은 이런 마음의 딱지가 붙어서 생긴다.
자기 비하와 연민의 패턴을 끊어내는데 10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다. 내가 잘못되었다 느낀 후 차마 부끄러워 나열할 수 없는 삽질과 이불킥, 우울증의 신체 반응을 수도 없이 겪었다.
나만의 매뉴얼이 생길 정도로 우울을 다룰 수 있게 되니 다른 사람들의 삶이 보였다. 항상 외부에 있는 그들이 투명한 끈처럼 나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신기했다. 자존감이 낮고 밝고 명랑하지 않은 성격에 극 I인 성향이 더 고립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내 모습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끄덕인 순간, 타인의 모습이 평가 대상이 아님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남을 평가할 일 없으니 나도 더 이상 평가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내게 사랑을 알려준 존재인 고양이 자매 아띠와 루카와 가족이 되었다. 묘생을 책임지고 돌보고 있는 나는 아파도 안되고 우울증에 빠질 수가 없다. 지금 모습으로도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고양이들에게 크게 배웠다.
지금까지의 우울증과 싸운 나의 고투(struggle)를 고백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조건 없는 사랑과 무조건 내가 우선인 자기 돌봄을 알려준 고양이 자매는 11년째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쿨쿨 잘도 잔다.
좀 길었다. 내 서사를 쓰는 것 일기장을 꺼내는 것 같아 영 맘에 안 드는데, 자신과 내적 전쟁을 한 사람의 경험을 들으면 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카드가 준비되어 있어서 주절주절, 횡성수설.
일과 관계에서 밥먹듯이 나오는 '패턴의 카드' five of swords(혹은 검, 칼 5번).
노란색 배경에 오각형 틀이 만든 칼날 위에 벌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말벌은 집중된 고통들을 상징하고 있고 칼날 위에서 견디기 위해 힘을 쓰고 있다. 안타깝게도 날개를 갖고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난 안전하다는 거짓희망의 덫에 빠졌다. 부정적인 패턴, 습이 어떻게 생명체를 가둬두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습관, 습을 단순하게 일상 행동 패턴으로만 받아들인다. 양말을 또르르 말아서 방치한다던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놓고 잊어버린다던가. 뭐 이런 자질구레한 것들 말이다. 연애패턴이라고 하면 좀 더 쉽게 이 카드에 접근할 수 있다. 사람을 만나서 관계 맺고 좋아하다 헤어진다. 헤어진 후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아 먹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여러 번의 연애 경험을 하고 나면 좀 이상하다. 그들은 너무나 다른데 내가 좋아하는 포인트는 비슷하다. 그리고 화를 내거나 섭섭한 포인트도 비슷하고 비슷하다. 관계의 패턴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이 연애 패턴이다.
부정적인 패턴은 다양하다. 만약 맡은 프로젝트가 잘 안 되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제의 원인을 파악해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주변에 도움을 받아서 해결할 수 있다면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시인하고 나아가야 한다.
사회활동을 3~4년 이상 한 사람들은 부정적 패턴이 발동하는 경우를 겪었으리라. 다른 사람의 탓을 하거나 자기 비하를 하면서 퇴행을 하거나, 모르쇠 하며 회피 철수, 조용히 사라지는 잠수 등. 책임을 지는 경우에도 건강하게 일과 관계 속에서 털어버리지 못한 채 내 안에 그대로 남겨두기 쉽상이다. 이렇게 미뤄두면 다른 일 속에서 방어기제, 부정적 패턴으로 작동할 확률이 높다.
패턴은 자기 방어를 위해 타인을 이용해 희생자로 만들거나 스스로 피해자가 된다. 이어 자기 연민과 혐오를 반복하다 우울과 공황 상태에 빠진다.
자, 이렇게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절레절레. 부정적 패턴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행동이 안타까움과 당황스럽지만, 내가 그러는 것은 더 꼴 보기가 싫다. 사람들을 다 속여도 나는 알기에 도망을 쳐도 결국 그 자에서 공황상태가 된다. 기가 막힌 것은 무기력 속으로 들어가면 외부 탓, 자기 건강 상태 탓하면서 쉴 수 있다는 패턴이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아픈 상태를 만든다. 쉬고 싶어서 나오고 싶어서 안 좋은 패턴을 돌린다. 이렇게 우울로, 공황으로 도망치고 싶을 때 쉬는 시간을 주어야 한다.
틈과 쉼을 어떻게 줄까. 이것을 찾는 것이 현대인의 숙제이다. 성격, 기질에 따라 각자 다르기에정답이 없다. 갈등과 고투 상황에서 스스로를 끌어낼 매뉴얼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부정 패턴이 작동할 때 빨리 신체 반응을 알아차린다. 아무리 바빠도 하던 일을 팽개치고 혼자 공간으로 들어간다. 잠을 푹 자거나 햇볕아래 좀 많이 걷는다. 그리고 나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서 먹고 또 잔다. 조금 여유가 생기면 왜 몸이 반응했는지 뭐가 우울의 스위치를 건드렸는지 하나씩 꺼내서 살펴본다. 어떤 사건인가, 어떤 말인가. 그것이 왜 오늘 작동했는가 추궁하기보다 사실관계를 살펴본다. 잘 대처한 나를 칭찬하고 부정적 사건이라고 인식한 일의 해결 솔루션을 떠올려본다.
감정과 사건을 분리한다.
부정 패턴의 작동과 대응 매뉴얼의 반복이 빚은 마음의 딱지가 심장의 근육을 만들었다. 대응 매뉴얼은 다른 패턴을 스스로 몸과 마음에 안착시키는 조난키트 같은 것이다.
검 5번 카드의 고착한 상태는 내안에서 대결과 패배 그리고 복수로 이어진다. 현실에서는 제대로 복수하지도 못하고 마음속 전쟁을 한다. 패턴이 빚은 공항 상태에 빠지기 전에 나를 꺼내서 원인과 바꾸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반복과 실패하면서 다른 패턴으로 옮겨가는 것이 과제이다.
공격적 자기 비하 패턴 속의 칼은 나를 보호하는 것 같지만 나도 다치고 타인도 다친다. 누군가에게 복수할 상상과 마음으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것, 너무 아깝지 않나. 오늘 나는 어떤 '꼴'로 살고 있는지 내 앞에 세워놓고 찬찬히 살펴보자. 내 부정적인 패턴은 무엇인지.
패턴을 바꾸기는 어렵고 긴 시간이 걸리지만 실패를 겪더라도 계속하다 보면 된다. 피식 웃음 나는 순간이 올 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어휴, 참말로 너도 참 또 이런다. 어으 지겨워!! 근데 왜 이렇게 내 꼬라지가 웃기지. 웃긴다 웃겨." 혼자 미친 사람처럼 한참 웃고 나면 잔뜩 든 힘이 쭈욱 빠진다. 가벼워지는 찰나 나는 다른 곳에 서 있다.
나만이 나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은 진리이다.
202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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