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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에서 혼난 엄마

by 지호



원이가 다니는 복지관은 평일 4시에 일과를 마친다. 장애인 활동도우미 선생님이 원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7시까지 원이의 손발을 씻기고 과일을 갈아서 주시기도 한다. 원이는 칭얼댈 때도 있고 잠이 들 때도 있다. 원이의 입술은 살이 다 뭉개져 있는데 원이가 깜짝깜짝 놀라 경련을 할 때 입술을 깨물기도 하기 때문이다. 밥 먹다 숟가락을 깨물 때도 있어서 앞쪽이 좁아지는 숟가락 끝에 음식을 올려서 입에 얼른 넣었다 빼야 한다. 입술에 피딱지가 앉아 있는 날도 꽤 많다.


음식으로 섭취하는 영양분이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원이는 영양제와 단백질도 먹는다. 자기 전까지 유동식을 먹고 경직을 완화시켜주는 약과 영양제를 먹으면 윗옷에 받쳐준 가재 수건이 거의 젖어버린다. 옷도 마찬가지다. 치약을 잘 못 뱉기 때문에 아주 적은 양의 치약으로 이를 닦아주고 숟가락으로 입을 헹구고 옷을 갈아입히면 자기 위한 준비가 끝난다. 원이를 데리고 화장실이나 식탁을 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바닥에 앉은자리에서 전부 해결한다. 언니들이 집에 있을 땐 물을 떠다 주고 치우고 하지만 보통 때는 치울 게 산더미가 될 것이다.


원이가 혼자 자는 경우는 졸음이 밀려오는 낮잠시간 때나 아주 가끔 스스로 잠들 때뿐이다. 평소에는 불을 끄고 등을 토닥이며 재워줘야 하고 자다가 작은 소리만 들어도 놀라 눈을 뜬다. 노래를 불러주거나 말을 걸어서 백색소음을 만들어 주면 잠이 드는데 운이 좋으면 몇 시간씩 골아떨어지지만 한밤중에도 20분~50분에 한 번은 깨서 칭얼거리고 재우는 사람을 지치게 한다. 따로 사는 언니들은 많으면 한 달에 한번이지만 원이랑 같이 자면 엄마가 익숙한 원이가 더 안 잠드는 건 물론이거니와 언니들은 자다 깨서 성격이 파탄 난 상태로 왜 안 자냐고 소리쳐서 옆방에서 자던 엄마가 다시 와서 재우곤 한다. 육아를 22년 동안 하고 있는 셈이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깨면서 22년을 어떻게 살 수 있지? 나는 원이가 있는 집에 갈 때마다 엄마에 대해 생각하곤 한다. 정작 엄마는 이런 생각을 할 틈이 없다. 잠 많은 나에겐 신기하게도 엄마는 7시가 되면 일어나 아침을 차리고 아빠를 출근시키고 원이의 옷을 입히고 머리를 빗겨 복지관에 보낼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자주 화가 나기도 한다.



엄마가 베트남에 가기 전 원이가 평소보다 밥을 못 먹고 칭얼거려서 우리는 아이디어로 분유를 떠올렸다. 간편하게 타 먹일 수 있는 분유한통을 사고 과일과 우리가 먹을거리를 냉장고에 채우고 약 먹이는 순서를 써놓은 엄마는 그래도 불안한지 차라리 베트남을 가기 싫어했다.




급성 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내과중환자실에서 투석줄을 끼고 있는 원이는 신장과 간 수치가 안 좋고 폐렴이 의심돼 CT를 찍어야 했으며 근육 수치는 측정불가에 심각한 영양 불균형 상태였다. 응급실에서부터 같이 있었던 둘째와 나는 간호사가 물어보는 원이의 평소 상태에 대해 정확한 답변을 할 수가 없었고 원이 보호자를 찾는 의료진의 의문스러운 얼굴에 ‘엄마가 아니라 언니’ 라는 대답으로 이해의 눈빛을 받을 수 있었다.


급히 귀국해 병원에 온 부모님을 보러 교수님이 중환자실에 왔고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원이 상태에 대해 듣기 위해 서있었다.


“어머니, 원이가 평소에 밥을 잘 안 먹나요?”

“잘 먹어요. 밥은 꼬박꼬박 먹고 고기나 과일도 갈아서 주면 잘 먹는 편이에요.”

“제가 원이 같은 발달장애 아동들을 몇십 년 봐왔는데요, 원이 영양상태는 정말 안 좋은 편이에요. 22세인데 20kg 이잖아요, 어머니.”

“잘 먹인다고 먹인 건데...”


엄마를 향한 단호한 교수의 말에 엄마는 모든 게 본인 탓인 거 같은 표정을 지었다.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원이가 이렇게 된 건 잘 돌보지 못한 양육자의 책임이라고. 원이의 보호자가 네 명이나 같이 서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연하게 죄인이 된 것은 엄마였다.



나는 원이도 원이지만 자책하는 엄마를 볼 때마다 마음이 안 좋았다. 원이 상태가 안 좋아서 언제든지 ‘안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던 엄마의 불안을 종식시키고 놀고 오라며 떠민 것이 나였기 때문이다.


“자기 두고 가지 말라는 원이 경고를 무시해서 우리한테 저주를 내렸다.”


우리는 평소에도 우스갯소리로 “원이의 저주“ 라며 원이가 모르는 것 같아도 자기를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곧 벌을 내린다는 말을 하곤 했다. 뭘 어쩌겠어 하며 원이 볼이라도 꼬집었다가 밖에 나가 돌에 걸려 넘어지면 원이를 떠올리면서 식겁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원이는 우리 가족 모두를 모이게 해 본인이 서열 1위임을 재확인시켰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초능력이 발휘되길 원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에 출발하는 날 전까지도 몸이 무거워 짐 꾸리기에 늦장이었던 엄마는 원이가 언제 일반실로 옮길지도 모르면서 일반실에 가면 입힐 옷가지, 필요한 것들을 챙긴 가방을 만들어 놓았고 원이의 복지관과 교회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리고 주변에 조언을 구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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