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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외면해

by 지호


하루에 30분씩 정해진 시간에 면회를 가던 날이 3주째 이어졌다. 중환자실에서 3주차에 들어서자 서울에 사는 나와 동생은 대전으로 일주일에 2~3번 가던 면회를 줄이고 주말에만 내려갔고 대신 단톡방을 통해 엄마에게 매일 자세한 보고를 받기 시작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고속버스에 몸을 싣고 또 몇 시간 후 서울로 돌아오던 수고에 비해 원이는 거의 미동 않고 잠만 잤기 때문이다.


3주차가 되자 원이는 달고 있던 호흡기를 뺐고 각종 수치가 심각한 수준을 벗어난 상태가 되었다. 25일 만에 엄마가 원이가 집중치료를 끝내고 일반실로 갈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고 언제 이동하냐고 물어볼 새도 없이 엄마는 일반실로 옮긴 인증 사진을 보내주었다. 음식을 주기 위해 코로 삽입한 관은 여전히 유지한 상태였다.


나는 원이를 볼 생각에 신나 하루 자고 올 짐을 챙겨 병원으로 갔다. 오랜만에 본 원이는 누워있지도 않았고 의식이 있는 모습이었으며 가끔씩 방긋 웃기도 했다. 원이의 호전에 뛸 듯이 기뻐했지만 원이는 여전히 신장 수치가 안 좋았고, 우리는 원이가 염증과 각종 합병증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더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실로 간 것은 다 나아서가 아니라는 게 실감났다. 원이는 여전히 치료가 필요한 환자였다.



원이는 수치가 전체적으로 안 좋아서 신장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함부로 진통제나 진정제를 투여할 수 없다고 했다. 밤이 되자 원이의 경직은 더욱 심해졌다. 엄마나 내가 간신히 붙들고 있어도 온 몸이 틀어지고 끙끙거리고 혀를 깨물기를 반복해 입안에서 피가 흐르기도 여러 번이었다. 엄마는 원이 수치가 안 좋아져도 괜찮으니 지금 당장 증세와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조치를 해 달라고 의료진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의사는 안타까워 하며 이 상태에서 약을 투여하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할 뿐이었다. 엄마가 여러 번 요청하자 의사는 안 되겠던지 한숨을 쉬며 나와 따로 이야기하길 원했다.


“어머니가 환자분 상태의 심각성을 모르시는거 같은데, 이런 몸 상태에서 진정제 같은 약을 투여하면 수치가 안 좋아져서 사망에 이를 수도 있어요...”


의료진에게 이미 방법이 없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원이가 너무 고통스러워 보였고, 원이도 원이지만 몇 시간째 발작 비슷하게 몸을 뒤틀고 혀를 깨무는 원이를 안고 있는 엄마도 못 버틸 상황이라는 게 문제였다. 원이는 어찌나 세게 경직을 하는지 머리가 뭉텅이로 빠지고 눈이 황달로 노랗게 변했다. 치료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의료진의 상황은 이해했지만 몇 시간째 원이를 붙들고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를 보니 간절할 수밖에 없었다. 참다못한 내가 또 스테이션을 찾아가자 담당 의사는 간호사의 부름에 뒤를 돌아보지 않았고 나는 그 장면을 보고 화가 나 결국 병실로 돌아왔다.


내가 몇 번 원이를 들어 안았지만 엄마는 나를 방해꾼 내쫓듯이 나가서 자라고 했다. 새벽 네시가 넘었지만 시간은 전혀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고 원이 외에 나까지 신경 쓰게 된 엄마는 신경질을 냈다.


“네가 여기 있는게 나는 더 스트레스야. 그냥 외면해!”


15분만 그 자리에 있어도 벼랑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만큼 압박이 심했다. 이 압박을 엄마 혼자 견디게 내버려 두는 게 정상인가? 그 자리에서 나의 존재가 엄마나 동생한테 도움이 안되는건 분명했지만 나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이도저도 못하고 병실 밖을 층층마다 서성였다. 엄마 말이 맞다. 내가 그 자리에 있든지 말든지 어찌됐건 시간은 지나갈 것이다. 이미 판단력은 흐려졌고 몸은 혼자 있지만 머릿속에서는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나는 아무도 없는 대기실 의자에 모로 누워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아침이 되어도 상황이 나아질 거 같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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