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대학교병원 내과계중환자실에서 수속을 마친 나와 첫째동생은 택시를 잡았다. 벌써 어둑어둑한 밤이었다. 한 시간 넘게 대기실에서 기다렸지만 보호자분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원이 상태에 변동이 있으면 알려주겠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집에 가 있기로 한 것이다. 부모님은 내일 아침에 한국에 도착 예정이었다.
- 충대병원 중환자실이 간호등급 1등급이래.
대기하면서 이것저것 알아 볼 시간이 많았는지 동생은 병원에 대한 여러 가지를 말해주었다.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0.5미만인 경우를 간호등급 1등급이라고 한다. 여러모로 충남대학교 병원은 서비스 만족도가 높은 병원이라고 했다.
그래, 간호사분들 칼퇴 하는거 같더라. 그런 경우 드물지 않나.
- 원이 봐준 의사는 엄청 피곤해보이던데, 다크써클이 광대까지 내려왔더라. 응급실의사라 그런가.
응급실에서 원이를 봐준 소아과의사, 아마도 인턴일 듯한 젊은 의사는 친절한 목소리에 48시간정도는 못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창백하고 앳된 얼굴을 떠올리자 둘 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혹시 간호사 분들이신가요?” 우리의 얘기를 듣던 택시기사가 함박웃음을 머금고 물었다.
“아니요.”
둘 다 다정한 기질은 아니었다. 동생과 나는 동시에 대답하고 하던 얘기로 돌아왔다.
- 원이 죽는거 아니야?
장애 가족이 있다면 나머지 구성원은 항상 죽음을 염두에 두게 된다. 뇌성마비 1급 장애로 평균수명도 짧고, 10년이나 15년밖에 못 산다던 원이는 스물 두해를 살고 있다. 엄마는 원이가 이제껏 병원 한번 간 적 없는데 이번에 몰아서 아픈거 같다고 입원한 동안에도 여러 번 말했다.
- 원이님 이정도면 오래 사셨지.
원이에게 우리는 가끔 극존칭을 쓴다. “원이님”.
원이는 본의 아니게 가족을 종으로 부리고 우리에게는 원이가 왕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원이님” 이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갓난아기 앞에서는 박수를 치며 온갖 아양을 떠는 것과 같은 이치다.
- 지금 혼수상태니까 고통을 안 느끼지 않을까?
차라리 자다가 자연스럽게 죽었으면 좋겠다.
- 원이 죽으면 여기 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례식하는거 아냐?
으, 진짜 싫다. 나는 모르는 아저씨들이 와서 원이한테 절하고 육개장 먹는 꼴 절대 못 봐.
- 미친 듯. 원이 파티 해주자. 바닷가에서 굿바이파티하는 미드 있잖아. 관에 넣어서 꽃으로 장식해주자.
꾸며서 자운대공원 데려가자. 원이 거기 좋아해. 가서 소수정예로 파티하면될 듯.
혼수상태로 생사를 넘나드는 막내동생을 두고 태연히 죽음을 얘기하는 언니들만큼 삶의 모순이 또 있을까. 우리는 꽃길로 만들어줄 원이의 장례식을 이야기하며 킬킬대고 웃었다.
“이쪽 길로 갈까요? 육교 쪽이 지금 밀리나본데, 어디가 좋으셔요~?”
“네 이쪽 길로 가주세요.”
경쾌한 택시기사 아저씨는 오는 내내 우리말에 끼어들기도 하고 의견을 내기도 했다. 아저씨의 말투에서 순수한 즐거움이 느껴져 대화를 방해받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장난치듯 이어진 우리의 대화에서는 조금의 슬픔도 찾아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 우리는 ‘대전 택시 기사들은 왜이렇게 친절해?’ 라는 말을 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집안에서는 냄새가 진동했다.
- 얘가 가기 전에 집을 완전히 똥 폭탄으로 만들어 놨어.
열이 39도까지 오르고 설사로 온몸의 탈수증세를 표출한 원이의 미처 치우지 못한 기저귀와 수건, 옷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방에서 저방으로, 쇼파와 거실 바닥까지 남아있는 흔적을 치우기 위해 당장 환기부터 했다.
- 쇼파 쿠션에 묻은 거 같은데? 으악!
우리는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청소를 했다. 원이의 베개와 인형, 쇼파 쿠션도. 동생이 화장실에서 애벌빨래를 하고 나에게 건네주면 내가 세탁기에 넣었다. 오염된 옷과 이불은 1차로 화장실에서 닦아낸 다음 오염정도에 따라 세탁기에 돌렸고, 세정제를 뿌린 거실 바닥을 물걸레로 몇 번씩 닦아냈다. 빨래를 돌려도 냄새가 빠지지 않는 거 같아 심한 건 두 번씩 돌렸다. 서울에서 같이 살 땐 청소로 일주일에 몇 번씩이나 싸우던 나와 동생은 말없이 한 시간 반 동안 집안 청소를 했다. 걸레로 몇 번씩 구석구석을 닦아내니 땀이 뻘뻘 났다. 빨래를 다섯 차례 넘게 했지만 전부 급속모드로 돌리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웬만큼 흔적이 없어지자 하나씩 꺼내 냄새를 맡아보며 건조대에 옷을 널었다.
- 냄새 안 빠질거 같아..
기나긴 청소가 끝나고 우리는 원이를 생각하며 한숨 쉬듯 웃었다.
이불을 깔고 누워 핸드폰을 켜니 곧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원이도 보고 싶었다. 사진첩을 열어 원이가 환하게 웃는 사진을 보니 갑자기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원이는 당연히 건강하게 나아서 퇴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이가 언제까지 살까? 라는 그동안의 나의 물음은 이제 조금 더 구체적이 되었다. 원이가 아프지 말고 하늘나라에 가기를. 그렇지만 이번에는 아직 때가 아닌 거 같았다. 한동안은 원이를 더 맘껏 사랑해주고, 원이의 웃는 모습을 즐기다 보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