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수요일
폐렴-기관 삽입
신장수치 안 좋음
영양불균형
1월24일목요일
근육수치2000
매일 반씩 떨어지고 있음
투석 줄이는 중
1월25일금요일
호흡기 유지
미열 있음, 해열제투여X
신장수치 2만까지 올랐다가 1만대로 떨어짐
나와 첫째 동생은 부모님이 온 뒤 서울로 다시 올라갔다.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던 나는 이틀에 한번 꼴로 대전에 내려가 중환자실을 방문했다. 내가 못간 날은 동생이 내려갔다. 중환자실 면회는 하루 30분. 정확히 오전 10시가 되면 문이 열리고 경비원이 두 명씩 입장하라는 말과 함께 면회시간을 안내해준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원이를 더 보기위해 문 바로 앞에 서 있다가 병실을 거의 뛰어서 들어갔다.
엄마, 동생과 나는 톡으로 원이상태에 대해 브리핑 해주는 담당의와 간호사의 말을 적어서 공유했다. 알 수 없는 말들이었지만 원이가 죽을 거 같지는 않았다. 수치가 점점 회복되고 있었고 위기상황도 있었지만 날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희망적이 되어갔다.
“원이 눈떴다!”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삼일 만에 원이는 눈을 뜬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엄마도 초기 암으로 수술 받은 적이 있고 아빠도 수술을 받았었지만 원이가 입원한 모습은 그 자체로 충격이었다. 다 큰 성인이 아닌 작은 몸집으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는 원이는 평소보다 더욱 연약해 보였다. 그래도 많이 회복됐다고 우리는 원이를 ‘불사조’ 라고 불렀다.
거의 이주동안 원이는 중환자실에서 잠만 잤다. 엄청난 양의 약과 진정제를 투여하느라 거의 헤롱헤롱한 상태라고 들었지만 확실히 엄마가 매일 찾아가니 조금 생기를 되찾은 거 같았다. 엄마는 원이 손발을 닦아주고 원이 귀에 대고 평소 부르던 노래를 해주고 기도를 했다.
“원이 다시는 안 웃는 거 아니야?”
원이는 웃음이 많았다. 가만히 있다가도 우리가 밝은 목소리로 원이와 놀아주면 금세 까르르 까르르 웃었다. 원이는 즐거워서 웃는 것도 있지만 우리가 ‘웃겨주면’ 잘 웃었다. 짜증도 많고 울음도 많지만 평소 우리의 단톡방은 원이 예쁜 사진을 공유하는 용도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엄마가 보내는 병원 사진에 우리는 매일같이 “웃었어?” 라고 물어봤다. 평소였으면 “언니 왔다!” 하며 깜짝 놀래켜 줘도 환하게 웃던 원이가 이젠 별 짓을 다해도 눈만 끔뻑이니 웃음을 잃어버렸을까봐 두려운 마음이 컸다. 원이가 좋아하는 멜로디카드를 가져가고 평소 하던 말도 몇배로 오버하면서 원이를 ‘웃기려고’ 애썼지만 원이의 반응은 미미했다. 투석 때문에 얼굴이 붓고 무거운 호스들을 줄줄이 달고 있는 원이에게 무리한 요구였을 것이다. 아픈 사람한테 가서 한번 웃어보라고 광대짓을 한거나 마찬가지였지만 본인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가족에게 화가 난 원이가 다시는 웃어주지 않을까봐 우리는 끝까지 용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