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했던 대로 고통스러웠던 밤은 아침에도 지속됐다. 원이의 경직은 진정되지 않았고 끙끙거리며 날을 샌 상태였다. 병실의 사람들이 깨어나 좀 더 관심받는 분위기가 되었고 아빠가 와서 엄마대신 의료진을 설득했다. 설득이라기 보단 호소에 가까웠다.
“성인이 이렇게 안고 버티기도 힘들 만큼 고통스러워하는데, 이런 식으로 수치만 좋아지면 뭐 합니까? 이건 사람 사는 게 아니잖아요!”
오전이 되어 바뀐 담당의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충분히 공감해 주고 간밤에 있었던 일에 죄송함을 표했다. 우리는 원이와 상태가 비슷한 다른 가족이 쓰는 진정제 등 아는 지식을 총 동원해서 가능한 걸 해달라고 부탁했다. 의사는 원이의 상태가 악화될 가능성이 있어도 최대한 고통을 경감하는 쪽으로 처치하는 것에 보호자분들이 동의하는지 물었고 우리 가족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의료진이 상의해서 곧바로 진정제를 가져왔다.
20분 정도가 지나자 원이가 몸에 힘을 풀며 스르르 잠에 들었다. 모두가 긴장을 놓은 순간이었다. 한편으론 어젯밤부터 원이를 편하게 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의료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파죽음이 된 원이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주며 우리는 한 시름을 놓았다.
[수고했다. 원이 잘 잔다. 밤에 많이 울었지?]
비몽사몽으로 서울을 올라가는 나에게 엄마가 카톡으로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나는 간밤에 울지 않았다. 단지 생각이 멈췄을 뿐이었다. 의자에서 선잠을 자다 중간중간 원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원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엄마 저러다 미쳐버리면 어쩌지?- 서울에 있는 둘째 동생에게 문자를 보내자마자 울며불며 전화가 왔다. 감정이 격한 둘째와 달리 나는 평소에도 냉정하리만큼 침착하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맞닥뜨리자 머릿속은 어중간하게 고착되었다. 문제발생 -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삶은 이렇게만 흘러가지 않는다. 언제나 예측하기 힘든 일만 일어나는데 특히 가족에 관해서라면 나는 평소 갖고 있던 능력도 잃어버린다.
병원에서 원이를 달래다 보면 원이가 주의를 놓고 칭얼거리기 전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될 때가 있다. 놀래키기도 하고 웃겨주기도 하고 별짓을 다하다 나는 동화를 만들어서 들려주었다. 만들고 들려주었다기보다 의식의 흐름으로 탄생한 거지만. 코에는 호스를 끼고 위에서 염증을 뽑기 위해 주사기를 줄줄이 달고 있는 원이가 상심할까 봐 해준 이야기이기도 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티라노사우루스와 원이
“공룡같이 생긴 원이는 티라노사우루스라는 친구가 있었어. 원이는 성격이 더러워서 티라노사우루스한테 못되게 굴었어. 티라노사우루스는 착해서 계속 놀아줬는데 참다 참다 결국 공룡나라로 가버렸어. 원이는 건방져서 자기가 잘못한 것도 모르고 그냥 살았지만 그러다가 티라노사우루스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어졌어. 그런데 혼자 가기가 무서웠어. 사실은 공룡나라 가는 길에 티라노사우루스가 마중 나와서 공룡나라로 같이 가주려고 하고 있었어. 티라노사우루스는 공룡나라에서 원이를 기다리고 있거든.
원이는 사실 익룡이라서 공룡나라를 가면 날아다닐 수가 있어. 지금은 땅이라 날 수가 없어. 공룡나라 가면 친구들도 많아. 원이는 공룡나라 나이로 계산하면 200살이야. 공룡시간은 더 빨리 지나가서 공룡나라에서 친구들이랑 1년만 살고 있으면 언니들도 올라갈 거야.
원이가 결국 공룡나라를 갔는데 성격이 더러워서 땅에서 하던 것처럼 그대로 했어. 공룡나라에서는 그러면 안 되는데 공룡들 말도 안 듣고 지 맘대로 돌아다녔어.
원이는 결국 쫓겨나서 바다로 휙 빠졌어. 바다에 빠진 원이를 고래가 보고 구해줬어. 원이는 헤엄을 못 쳐서 고래가 입속에 넣어줬어. 원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고래상어는 이빨청소를 하루에 10분씩 하면 플랑크톤 10마리를 준다고 했어. 그런데 원이는 청소를 대충 했어. “청소하기 싫어! 난 플랑크톤 싫어!” 맨날 짹짹거려서 고래가 짜증 나서 원이를 확 뿜어버렸어. 그래서 원이는 고래뱃속에서도 쫓겨났어.
지나가던 거북이들이 원이를 보고 등에 태워줬어. 원이는 거북이들한테 헤엄도 배우고 거북이들이랑 친해졌어. 거북이들은 호주 앞바다로 가는 중이었어. 시드니 앞바다까지 가서 원이는 거북이알을 훔쳤어. 그래서 원이 뱃속에 지금 거북이알이 두 개가 들어 있어. 원이는 막 도망가고 거북이들은 원이를 막 쫓아갔어.
... 중략...
공룡나라에서는 티라노사우루스가 원이가 바다에 빠졌다는 소식을 듣고 원이를 구하러 가고 있었어. 가는 길에 티라노사우루스는 거북이 한 마리를 만났어. 그 거북이는 원이 친구인데 원이가 알을 훔쳤지만 친구니까 용서해 줄 생각을 하고 있었어. 티라노사우루스와 거북이는 원이가 상어 떼랑 있는 걸 보고 구하러 갔어. “야! 너 거기서 뭐 해! 빨리 와, 같이 공룡나라 가자!”
원이는 상어 등을 밟고 점프해서 티라노사우루스한테 갔어. 육지로 올라가자 원숭이들이 춤을 추면서 원이를 맞아줬어. 원이는 원숭이들 틈에 껴서 같이 춤을 췄어. 펄쩍펄쩍 뛰면서 놀다가 원이는 티라노사우루스, 거북이, 원숭이들과 다 같이 공룡나라에 올라가서 행복하게 살았어.”
*원이가 무서워하지 않게 같이 공룡나라에 가 줄 친구로 티라노사우루스, 고래, 거북이, 원숭이가 등장한다.
*나중에서야 내가 상상한 착한 공룡이 초식인 브라키오사우루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원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뱃속에 거북이 알이 들어있다고 하는 부분이다.
원이가 공룡나라에서는 친구들과 뛰어다니고 춤도 출 수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