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부산물

by 왜살지

보르헤스를 2번 읽었다. 신은 선과 악을 포함하기에 예수와 유다에게 대칭의 역할을 주었다. 무한의 무질서는 곧 질서다. 나는 나이면서 동시에 그이고, 그이면서 어느 누구이고, 아무도 아니다. 나는 누군가가 꾸는 꿈이고 누군가가 꾸는 꿈은 누군가가 꾸는 꿈의 꿈이다. 죽음이 꿈에서 깨는 일이 아니란 보증이 어디 있으랴? 삶은 한 번 뿐인 것일까 무한히 반복되는 것일까. 무한히 반복된다면 유일의 삶은 아니겠지. 무한히 다른 삶이겠지. 무한히 다른 삶이라면 ‘나’로 사는 삶은 유일의 삶이겠지. 그렇다면 왜 하필 ‘나’냐고 묻는다면 우연일 수도 있지만 선택일 수도 있겠지. 삶이 무한한 우연들의 연쇄의 결과라면 무한한 우연들의 연쇄는 필연의 다른 말일 수 있겠지.

이제 책을 이해하며 읽기를 포기했다. 독서는 입체가 지닌 무한수의 평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일이다.

삶은 살 만한 것이냐라는 물음의 전제는 삶은 피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닐까? 죽음은 죽을 만한 것인가라는 물음의 전제가 죽음을 피할 수 있느냐이듯이. 가능한 경우는 영원한 죽음 또는 영원한 삶일까 영원한 죽음 ≡ 영원한 삶일까.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