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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erJ Apr 11. 2024

결혼했지만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이유

비난하는 남편에게 안쓰럽다 말했다

작년 여름, 내 생일이라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을 정해서 가족 외식을 하러 가던 길이었다. 남편이 주차를 묻길래, 여기 가게에 따로 주차장이 없어서 근처에 있는 시청 주차장에 대야 한다고 말했다.


아니 무슨 주차장 없는 식당을 골랐어?


...내 생일에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을 간다는데 주차장 없는 곳 골랐다고 비난을 받아야 되나? 순간 빈정이 확 상했지만 뒤에 아이들도 있는데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겼다. 하지만 그 뒤로도 식당에서 음식이 남편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은근히 눈치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좀 씁쓸했다. 


그리고 며칠 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일정이 있어 나가기 전에 준비하면서 화장실이 급해 가게 되었다. 내 등 뒤로 남편의 재촉하는 소리가 들렸다. 


화장실 빨리빨리 다녀와!


아니 화장실은 생리현상으로 가는 곳인데 이걸 재촉하나...? 싶어서 또 마음이 상했지만 급한 와중에 싸울 시간이 없으니 한번 더 넘겼다. 물론, 내 성향상 그 순간에 바로 표현하는 걸 넘겼다는거지 마음 속에서는 털어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을 남편에게 어떻게 전달할까 고민했다. 


싸워서라도 내 할 말을 다 하는게 우선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말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건 싸워서 서로 더 감정적으로 치닫고 에너지 소모하며 서로를 상처주는 게 아니기에 넘긴 것이라 그런 방향으로 가지 않도록 잘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내 입장과 마음도 한 번 들여다보고, 그 순간 그렇게 말하게 된 남편의 입장과 마음도 한번쯤 생각해보고 나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내 생일에도 내가 가고 싶은 식당을 고른건데 거기에 주차장이 따로 없다고 '무슨 주차장 없는 식당을 골랐냐'고 말하고, 서두르는 마음은 알지만 나도 그 타이밍에 화장실 가고 싶은 걸 다 조절할 순 없는데 '빨리 빨리 갔다오라'고 하는 당신을 보면서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자기 자신한테는 얼마나 평소에 닥달하거나 비난하는 말들을 많이 할까 싶어서 안쓰럽더라. 


서운하다, 기분이 나빴다,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말아달라.. 내 입장과 마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이렇게 말한 이유는 두 가지였다. 1. 남편은 아마 스스로 의식하면서 말한게 아닐테니 한번쯤은 자신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면 하는 의도 2. 그런 남편을 비난한다면 방어적으로 나왔을텐데 그 대신 남편의 그런 마음과 상태에 대해 내가 안쓰러워하고 있다고 하니 한번쯤 자신도 자신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의도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건넨 말이 가식인건 아니었다. 정말로 좀 더 찬찬히 생각해보니 그런 말을 하게 되는 남편의 마음에는 여유가 하나도 없고 뭔가에 쫓기고 시달리는 듯한 상태가 느껴져 안쓰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서운함이 전부 상쇄될 수는 없지만 그가 나를 일부러 상처주려고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믿고 그 너머의 상태를 보게 되면 그 일들이 별 다른 상처로 남게 되진 않았다.


몇 달이 지난 일이라 남편이 내 말을 듣고 어떤 반응을 했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별 다른 반응이 없었던 것 같다. 중요한 건, 평소 하던 것처럼 남편에게 내 입장, 내 마음 위주로 전달했던 것보다는 결과적으로 좋았다. 남편은 별 반응이 없었는데 뭐가 좋았냐고 한다면 일차적으로는 내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받은 상처와 속상함에 머무르지 않고 남편을 헤아릴 수 있는 여유와 힘을 느꼈다는 점에서 좋았고, 그걸 정말 남편을 위한 마음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는게 의미있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해내는 게 쉽진 않아서 이 후로도 남편이 날 비난한다고 느껴지는 말을 하면 바로 발끈하고 싸우고 더 공격하고, 비난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래서 벌써 몇 달이나 지난 이 일을 다시 꺼내어 정리해본다. 내가 남편으로부터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잘 독립할 수록 남편을 나와 떼어서 볼 수 있는 여유와 힘이 생길테니까. 그게, 내가 홀로서기를 연습하는 이유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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