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받고 싶은 마음
감지덕지: 과분한 듯이 아주 고맙게 여기는 모양.
이 감지덕지한 마음을 나는 남편이 나에게 갖길 원했다. ”이런 나를 받아 주고 사랑해 주는 사람은 당신 밖에 없어!“ 라는 말을 듣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계기는 여동생과의 대화였다. 지금은 결혼했지만 당시 예비 시어머니였던 분으로부터 여동생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한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분과 헤어지자마자 같이 있었던 남자친구에게 불편하고 기분 나쁜 마음에 대해 얘기했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내 동생이 불편할 거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무딘 편이긴 했지만 동생의 말에 이렇게 반응 했다. ‘엄마에 대한 불편한 마음 때문에 너가 나까지 미워하게 될까봐 무섭다’고. 우리 엄마에 대한 불만에도 내가 상대로부터 미움받을까, 버림받을까 무서워질 정도로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마음을 받는다는게 문득 부러웠다. 내가 원하는 그 감지덕지의 마음 같아서. 생각해보면 남편은 연애 때나 결혼해서나 나에게 그렇게 쩔쩔맸던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더욱 그랬다. 심지어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나에게 한 고백을 보류 당했을 때에도 겉으로는 태연했던 사람. 나에게 남편은 자존심이 강해 나와의 관계와 본인 자존심 중 택하라면 자존심 지키는 걸 택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라 자꾸만 남편이 자존심을 내려놓는 것을 나에 대한 애정의 척도로 생각하게 되었다. 나를 자신보다 더 과분하게 여기면 나를 놓을래야 놓을 수 없지 않을까 하는 어쩌면 참 유치한 그런 생각으로 감지덕지의 마음을 원했던 게 아닐까.
남편을 존경하고 좋아하지만 내 기준과 달라 참고 감당하는 부분이 있다는 걸 가장 잘 아는 나는 남편이 그걸 알고 감사하길 바랐다. 그 마음을 대 놓고 말하면 싸움이 될까봐 자꾸 가스라이팅 하듯 은연 중에 그런 뉘앙스의 말들을 자주 던져왔던 게 퍼뜩 생각났다. 때로는 농담처럼,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남편의 말을 듣고 내가 나를 ‘남편을 감당하는 대단한 사람’으로 말해왔다는 걸 깨달았다.
”나도 궁금해. 정말 내가 다른 여자들은 감당 못하는 그런 정도의 사람인지.“
남편은 화를 내거나 비난하는게 아니라 정말 궁금하다는 투로 담담하게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내가 도대체 남편에게 무슨 말들을 해 온 걸까... 남편의 어떤 부분은 ‘내 기준’으로 인해 참아야 하는 것이 되었고, 그게 아니라 해도 감당하기로 한 건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 선택’인 건데 그걸 남편이 알아주길 바랐다. 그것도 남편을 ‘감당해야만 하는 사람’으로 깎아내리면서까지. 나라면 가스라이팅이 먹혀서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믿어버렸을 가능성이 높은데 다행히(?) 자존심도 자존감도 나름 높은 남편은 내 가스라이팅에 넘어가지 않았다. 다만 궁금해할 뿐.
여동생이 받는 그 마음이 처음으로 부러워졌다고 울기 직전의 상태로 말하는 나에게 남편은 ‘나한테 과분해서’가 아니라 ‘(서로 맞지 않거나 어떤 부분에선 내 기대에 못 미쳐도)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게 진짜가 아니냐고 말했다. 그 때의 나는 진짜가 뭐고 간에 내가 원하는 그 마음이 오지 않는다는 것에 꽂혀 그저 서러웠다. 내가 받고픈 마음을 위해 남편을 깎아 내리는 가스라이팅을 해왔다는 걸 깨달은 건 그 뒤로도 시간이 좀 더 지나서다. 정작 나는 널 감당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말 한 마디면 무너져 내리는 그런 사람이면서 남편에게는 그 많은 말들을 꾸준히 던져온 걸 생각하니 참 민망할 정도로 미안해졌다. 그런 메시지를 받으면서도 별 영향 없이 넘겨 온 그 멘탈은 부러웠고.
미성숙하고 심지어 효과조차 없는 그런 방법을 써 온 나는 참...사랑이 고팠나보다. 담백하고 깔끔한, 너무 건강해서 서로 헤어지더라도 응원하며 돌아서는 그런 사랑 말고 자존심도 자신도 다 버려가면서까지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질척여서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사랑을 바랐나보다. 그게 나에게는 버림 받을 일 없는 안전함으로 보였나보다. 그걸 너무도 간절히 원해서 그 기준에 벗어나는 건 마치 사랑이 아닌 것처럼 취급했다. 심지어 찬찬히 돌아보니 남편은 나에게 자존심을 철저히 버려가며 우리 관계를 지키려고 노력한 적이 아주 분명히 있음에도 잘 인정해주지 않았다. 이제는 그런 마음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상대방만 목 빠지게 쳐다보는게 아니라 그 목 빠지게 기다리는 나를 봐 주고 싶다. 뭐 이렇게 유치하게 사랑을 구걸하냐고 타박하는 대신 충분히 안심될 때까지 그저 꼬옥 안아주고 싶다. 그러면 이제는 받는 것만 기다리지 않고 먼저 주는 사람이 되겠지. 내 곁에 있는 이 사람이 얼마나 괜찮고 멋진 사람인지 얘기해주는 사람이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