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 뱃속에서 나왔을 뿐 나와는 별개인 존재를 내 뜻대로 키우기란 참 쉽지 않다는 걸 매일 같이 깨닫는다. 차라리 이 사실을 빨리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육아의 고통을 줄이는 길이다. 그렇지만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되진 않더라도 인생에서 중요한 한 가지 정도는 아이에게 줄 수 있었으면 하는 욕심은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서 한 번 생각해보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이에게 단 한 가지의 능력을 줄 수 있다면 나는 어떤 능력을 줄 것인가?
역시 '돈 많이 버는 능력'이 좋을까? '관계를 잘 맺는 능력'도 괜찮지 않을까? 여러 능력들이 머리를 스치다가 그중 한 가지가 마음에 와닿았다. 그건 바로 '쉽게 만족하는 능력'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만족감은 행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니 쉽게 만족하는 능력이 생기면 그만큼 쉽게 행복해지지 않을까. 우습게도 이 생각을 하자마자 '그런데 쉽게 만족해서 공부도 못하고 능력도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이어서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불만족을 채찍질 삼아 앞으로 나아갔나 보다. 그렇게 불만족에서 만족으로 옮겨가려는 시도는 얼마나 성공적이었을까? 그 시도가 성공적이었다면 지금 내 상황과 상태에 대한 불안이나 조바심은 없어야 하지 않을까? 순간의 만족도 분명 있지만 그 뒤에는 마치 세트처럼 다음 차례의 불만족이 연이어 따라왔다.
아이에게 주는 것까지 갈 것도 없이 바로 요즘의 내가 '쉽게 만족하기'를 연습하고 있다. 특히 육아를 하면서 더욱 이 능력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아이가 밥을 다 먹어야, 제시간에 자고 깨지 않아야, 걷기도 말도 배변훈련도 늦지 않게 시작되어야, 아프지 않아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육아를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날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육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육아도 하나의 일이자 노동으로 본다면 분명 만족감이 중요한 보상이 된다. 내가 세운 높은 기준들로 인해 만족감은커녕 아이에게 화를 내다 나 스스로에게도 화가 나는 악순환을 몇 번이고 겪은 후에야 나는 차차 기준을 낮추기 시작했다. 밥을 다 먹는 것에서 밥 다섯 숟가락만 먹기로 내려오는 것까지는 그래도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아예 안 먹는 것까지 내려오는 것이었다. 밥을 아예 먹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다른 대체 간식을 생각해두어야 그나마 속이 덜 탔다.
'쉽게 만족하기'는 지금의 나에게도 적용하려고 노력 중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만성적인 불만족에 시달려서 뭘 써도 뭘 그려도 부족하고 노잼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껏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내놓은 것이 만족스럽지 않으니 힘이 빠지고 다음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도 더 애써서 의욕을 내야 했다. 육아도 글쓰기도, 그림도 결국 마라톤인데 이렇게 매번 불만족의 김 빠짐으로부터 헤어 나오는 것부터 에너지를 쓰자니 꾸준히 달릴 힘이 부족했다. 이 것이 내가 의식적으로, 다소 억지스럽더라도 '쉽게 만족하기'를 연습하는 이유다. '좋은 글을 쓰고 재밌는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그냥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만족하려고 한다. 매주 꾸준히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 자체도 사실 대단한 거니까.
'쉽게 만족하기'의 끝판왕은 '존재로 만족하기'이다. 아이의 존재, 내 존재만으로 만족하기. 생각만 해도 어렵다. 늘 자신의 존재를 어떤 성과로, 결과물로 증명해야 했던 삶을 살아왔다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여기서 숨 쉬며 살아있는 걸로 만족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아직은 막막하고 멀게 느껴진다. 그렇지만 아이가 스스로의 존재 자체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걸 떠올리니 마음이 뿌듯해지는 걸 보니 멀어도 내가 원하는 목적지가 맞구나 싶다. 이제부터는 불만족의 채찍이 아닌 만족의 안정감을 발판으로 삼아 나아가 보려 한다. 결국 아이에게 한 가지의 능력을 '준다'는 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