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진 찍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실물보다 덜 나온다는 착각 때문이다. 사진은 내가 원하는 나보다 늘 숨기고 가리고 싶은 부분이 도드라졌다.
"원판 불변의 법칙"! 이를 확인하는 법은 간단하다. 사진발이 좋은 이들에게 물어보라, 만족하는지를..... 그들이 나와 반대되는(또는 같은) 생각으로 사진 속 자신의 모습에 불만이라면 이 법칙은 내가 신뢰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들처럼 나도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노래방이 국민 대다수를 가수로 만들었다면 휴대폰에 장착된 카메라는 남녀노소 모두를 사진작가로 키워 놓았다. 내가 어디에서 뭘 먹고 무엇을 하는지 찍어서 나만 보거나 간직하는 게 아니라 널리 알린다. 다양한 어플이나 기능으로 기상천외한 연출도 가능하지만 필름 값이나 인화요금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며칠 전 송년모임 사진들은 유독 거슬렸다. 음식점에서 서비스하는 분이 전문가(?) 같은 솜씨로 '김치'와 '손하트'를 번갈아 요구해서 여러 번을 찍었는데 불행히도 단 한 컷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편한 자리가 아니어서 그나마 경험상 잘 나오는 각도로 포즈(내가 만약 그 자세를 취했다면 바로 앉으라거나 얼굴이 안 보인다고 수정을 요구했겠지만)를 취할 수도 없어서 수 십 장의 사진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표정까지 어색했다. 어떠한 기술도 들어가지 않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었다. 일행 중 여성 한 분이 자기 나이를 밝히면서 "자기보다 위[上]인가?."를 물어온 걸 보면 그날 나의 실물이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는 나보다 여덟 살이 많았다.
그때 내가 입은 옷은 수백만 원을 호가했고 보통날보다 화장에도 신경을 썼다. 다만 그것들이 사진에도 실물에도 도움이 안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사람에게 의복은 맨 겉에 표피요......" <월든 Walden>에 나오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비싼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사진이 잘 나올 거라 생각했을까? 표피만으로 내가 뭐라도 될 거라 생각했을까?
사진은 나의 실체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었다. 공부를 한다고 허세만 떨었지 목표도 없고 체계적이지 않아 결과물은커녕 이런저런 욕심으로 쌓아둔 책들이 책상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를 간병한답시고 영혼 없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며 가족들에게 직접적인 도움보다 스스로 게으르고 나태한 시간을 보내는 핑곗거리로 삼고 있었다.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불만 가득한 사회적 현실에 대해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을 분별하고 손절하면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원망이 가득 찬 마음에 어찌 훌륭한 육체가 있을까? 어찌 아름다운 표정이 나올 수 있을까?
나이가 들면 내면에서 무르익어 젊음의 아름다움과 비교불가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얼굴에 내 모습에 책임져야 할 나이를 훌쩍 넘기고도 어리석은 욕망이 가득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품위 있게 나이 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요원한 희망사항으로 끝낼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