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루틴으로 자리 잡은 책 읽기와 글쓰기, 백팔배를 딸아이가 쓰던 방으로 옮겨서 하고 있다. 동향이라 햇빛이 빨리 들어오고 창도 커서 스탠드를 켜두는 시간이 짧기 때문이다. 팬데믹 때 기숙사가 폐쇄되면서 1년 가까이 딸이 머물렀는데, 늘 불평이었다. 누가 하품을 하는지도 다 안다는 거였다. 유난 떤다고 핀잔했는데 며칠 있어보니 아직 새벽공기가 차서 창문을 닫고 있는데도 설마 했던 딸의 말이 사실로 드러나 새삼 미안함이 들었다.
쏴아샤~샤워기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소리. 그르렁~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 툭탁툭탁~도마 위에 칼질하는 소리. 촤르륵~아랫집 주방 중문이 열리는 소리. 여섯 시가 가까워오면 몇 대의 차가 시동을 켜는 소리가 순차적으로 더해진다. 마주 바라보는 집 2층에서 사용하는 철대문이 또각 열리고 챵~비교적 크게 소리를 내고 닫혔다. 그와 똑같은 재질인데도 여닫는 소리가 훨씬 덜 요란한 아랫집 대문소리, 또각거리는 하이힐 소리도 들리고 엄마를 불러대는 씩씩한 남자아이 목소리에 하품은 아니어도 누군가의 재채기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소리들이 그리 거슬리지 않아 책상에 그대로 앉아 있다가 문득 저 소리 내는 주인공들이 모두 젊은이들이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히 말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지금 움직임이 좋아서 하는 것이길. 콧노래를 부르며 하는 것이길.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언젠가는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리라는 꿈을 꾸기를. 하루하루 무의미하고 단순하게 시간 죽이는 삶이 아니길. 눈이 부신다고 감아버리면 그 빛은 나에게 어둠에 불과한 것이니 두 눈 부릅뜨고 동이 트는 하늘을 지켜보기를......" 크게 외치고 싶었다.
얼마 전 우연히 "결혼하지 않아요, 아이를 낳지 않아요." 청년들의 아우성을 TV 다큐와 유튜브를 통해 접했다. 청년의 50% 이상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그 도시가 20대의 젊은이를 빨아들였다가 30대가 되면 뱉어버리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서울로 향하는 젊은이들을 비난할 수 없을 만큼 사회구조적 문제가 심각했다. 구조뿐이 아니었다. 사회현상과 문화적인 기류도 젊은이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자유경쟁시대에 성공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난 탓이거나 흙수저인 부모를 원망하라고 주문하는 듯했다. 선량한 청년들은 고시원 쪽방촌이나 옥탑방, 반지하방을 전전하며 열정페이로 언젠가의 성공과 행복을 기대하지만 너무도 깊은 나락과 함께였다.
조금 다른 영역이긴 하지만 SNS나 AI의 등장으로 혼자 살아도 별 불편하지 않게 소통(물론 제대로 된 소통이 아니지만)하고 희생 없는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꽤나 충격적이었고 설상가상 그것들이 오히려 외모지상주의와 배금주의를 부추기고 있었다. 청년들이 이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희로애락 감정을 나누면서 고민하고 성장해야 하는 시기에 관음에 물들고 인간관계에도 왜곡된 양상을 보였다. 예컨대 성형 어플사이트를 통해 이미지를 만들고 실제 드러내는 것을 거부하는 거다. 결혼은 하되 출산을 하지 않는 형태가 그나마 나은 걸까? 젊음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것도 힘든 세상인 거다.
어디를 봐도 젊은이들을 기운 나게 하는 정보는 없었다. 곧 종말이 올 것 같은 환경문제. 세금에 짓눌리고 복지는 점점 멀어지는 불확실한 미래에 "자유"와 "경쟁"을 내세워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라고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게다가 혼자 살라는 말을 덕담처럼 해대는 부끄러움 모르는 기성세대들이 넘쳐난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임을 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기상천외한 삶을 사는 청년들이 어마하게 많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런 청년들이라고 이 모든 수렁에서 완전히 제외될 수 있을까?......
다름을 인정해 보라. 자신을 인식하라. 나를 발견하든 만들어가든 내 안으로 들어가라. 모두의 꿈이 내 꿈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고미숙 고전문학평론가는 명리학을 공부하면서 운명이 공평함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절대적으로 완전한 인간은 없으며 최상으로 타고난 자도 최악으로 타고난 자도 없다고 했다. 반드시 균형을 이뤄주는 인간의 사주와 팔자에 감동했다고 했다. 남보다 덜 이쁘면 머리가 좋거나 돈이 많으면 치명적인 부족이 따른다고 했다. 그래서 인간은 비교될 수 없다고....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태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돼라."
소로우도 우리의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돼라 했다. 돈을 버는 무역상이 아니라 사상을 위한 개척자가 돼라 했다. 우리 모두는 하나의 왕국, 우주의 주인이라 했다. 자신을 탐험하라고 했다.
유시민 작가도 그의 책 <표현의 기술> 말미에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에게 쓴 대목이 있는데 내 생각에 그 말은 어린이들에겐 좀 어렵고 오히려 젊은이들에게도 통할 것 같아서 인용해 본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러 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가지고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중략) 기원합니다."
길을 나서야 길을 찾는다고 하니 지금 가는 길이 험하고 지루하더라도 그 또한 길이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