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이맹 Nov 30. 2022

단순한 지혜: 마늘 심기

사실은 그냥 맘 편히 놀고 싶었다. 오랜만에 온 한국이니 그저 시골의 가을 풍경을 원 없이 즐기고만 싶었다. 강아지들과 놀고, 테라스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노트북이나 좀 두드리는 것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엄마 아빠가 참으로 바빴기 때문이다. 무척 뜨거운 가을볕 아래, 부지런히 움직이는 부모님 곁으로 가보았다.


“아니 뭐가 그렇게 바빠? 뭐해 오늘은?”

“마늘 심는 거야.”

밭에는 검은색 비닐이 큰 면적을 차지하며 분할된 채로 덮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검정 비닐에는 일정한 크기로 구멍이 나있었다. 엄마는 그 구멍마다 마늘 한쪽씩을 심었고, 아빠는 흙이 담긴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마늘이 심어진 구멍을 흙으로 메꾸었다.


“나도 할래, 나 뭐하면 돼?”

쭈그려 앉아 흙을 덮고 있던 아빠가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됐어, 너는 구경이나 해. 이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챙이 넓은 모자를 푹 눌러쓴 아빠의 얼굴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뜨거운 햇빛이 아빠의 땀방울을 비추었다. 마늘 구멍은 꽤나 많이 남아 있었고, 엄마 아빠는 쭈그린 채로 계속 마늘 심기에 열중했다. 나는 그저 보고 있을 수 없었다.


“아 뭐야, 나도 해야 빨리 끝나지. 나도 흙 덮을게.”

“다 요령이 있는 건데? 넌 안 알려 줄 거야. 우리 집 마늘이 매번 단단하고 맛있게 잘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아빠는 땡볕에 딸내미 고생할까 봐 계속 우스운 소리를 늘어놨다. 나는 아빠의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자리를 잡았다. 결국 아빠는 아빠의 흙 바구니를 내게 넘겼고, 당신은 새로운 바구니를 가지고 왔다.


한국의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고 또 너무나 뜨거웠다. 여름이 떠날 시기를 놓친 채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그늘 하나 없이 새까만 비닐을 앞에 두고 있으니 등에 땀이 쪼르르 흘렀다. 이마도 금세 땀범벅이 되었다. 게다가 쭈그려 앉아 있는 것은 또 어찌나 힘들던지, 나는 다리를 이 방향 저 방향으로 계속 움직여가며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자세를 바꿔가며 만들었다.

엄마 아빠는 지친 기색 하나, 아니 더워서 힘든 티도 하나 내지 않았다. 마늘 심기에 정말 진심을 다하는 부모님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나는 마늘이 어떻게 심어지고 어떻게 나는지 몰랐다. 마늘을 그렇게 좋아해서 심지어 별명 중 하나가 갈릭메이이기도 한데 말이다. 지난 7년 동안 엄마 밥을 먹을 때면 들어있던 마늘이 모두 부모님의 손끝에서 이렇게 탄생한 것이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마늘을 심으니 마늘이 나오는 것은 더욱이 신기했다. 잘 몰랐고, 사실 알고자 하지도 않았던 나는 마늘 씨라도 따로 파는 줄 알았던 것이다. 작년에 부모님이 직접 키웠던 마늘 중 일부를 다시 심어서 내년 마늘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엄마가 땅으로 곧게 찔러 넣은 마늘이 있는 구멍을 흙을 솔솔 뿌리며 덮었다. 햇빛이 완벽히 차단될 수 있도록 덮어줘야 했다. 흙에 돌멩이가 많아서 돌멩이는 따로 빼내야 했다. 다리가 너무 아프고 땀에 버거운 와중에도 그 동작은 견고해야 했다. 사실 특별한 게 없어 보이지만, 그렇다고 정성이 덜 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


마늘들은 각각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이제 완벽한 어둠에 갇혔다. 마늘들이 답답해하지는 않으려나? 바깥세상을 아예 못 본 것도 아니고. 이렇게 내년의 마늘 모종으로 선택된 것을 자랑스러워하려나? 마늘은 어두운 곳에서 겨울을 잘 보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겨울을 맞이하고, 겨울을 잘 보내면 이듬해 다시 단단하고 속이 튼실한 마늘로 다시 거듭나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 나도 새로운 나로 재탄생할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숨을 내쉬는 게 편하지 않을 만큼 답답함이 느껴질 때를 떠올렸다. 어쩌면 그런 시기들이 알고 보면 ‘다음’을 준비하는 것일까? 도약을 위한 필수불가결의 단계 말이다.


새 삶을 받아들이고 성실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마늘들을 보며 괜스레 마음이 묵직해졌다. 마늘을 심으면 마늘이 나는 그 단순한 논리가 어쩌면 그 무엇보다도 지혜롭게 느껴졌다. 마늘은 누구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 그저 어두운 땅 속에 심어저 홀로 또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런 마늘들에게 흙을 덮어주며, 그게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를 생각했다.


우리는 그날 총 1,441개의 마늘을 심었다. 목덜미가 타들어갈 것 같은 고통과 다리 감각이 사라지는 듯한 아픔을 인내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잘 완성된 땅을 보니 새삼 뿌듯함이라는 것이 솟아났다. 잘 덮어진 마늘 구멍마다 땅이 주는 아름다운 지혜가 알맞게 맺혀 있었다. 부모님과 함께 심은 우리 집 내년 마늘의 맛이 참으로 기대된다. 나는 그때쯤 또 어떤 어둠을 겪을 뒤일까.


무럭무럭 자라서 만나자 마늘들아!


이전 04화 감 따는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