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기억
우리가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 우리의 삶은 현실에 맞닿아 있지 않고 강 건너 다른 세계에 있었다.
나는 모든 계절을 사랑한다. 뿜어내는 공기와 살갗에 닿는 햇빛의 감촉, 장면으로 기억되는 계절의 색감, 하늘의 변화, 그리고 그 안에 조금씩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는 풍경을 좋아한다. 여름도 여름만의 색과 풍광으로 나를 매혹한다. 여름은 무언가, 누군가를 향한 마음이 흘러넘치고 열정이 터지는 계절이다.
사랑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돌이켜 보니 내 사랑의 시작은 모두 여름이었다.
여름의 빛과 공기는 물기를 머금고 더 선명해지는 과일처럼 쨍하다. 도망칠 줄 모르는 마음은 여름 햇빛과 그늘 사이를 오고 가는 눈빛 속에 금방 들켜 버리고 만다. 세상 모든 것을 씻어 내릴 듯 쏟아지는 한낮의 비는 촉촉과 축축의 경계에서 서로의 거리를 좁히게 만든다.
그해 여름, 헤어짐이 예고된 사랑을 시작했다. 꽁꽁 싸매 두었던 마음은 한번 빗장이 풀리니 여기저기에서 새어 나왔다. 초여름에 풀린 마음은 끝 간 데 없이 달려 나갔고 늦여름이 오면 떨어져 있어야 했기에 무언가에 끌리듯 그해 여름을 함께 보냈다. 여름밤은 서늘하고도 길었고 서로에게 하고픈 말,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렇다, 그때도 정작 중요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 말만 뺀 모든 말로 여름밤을 채워나갔다. 정말 조금 다른 세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도 지금도 현실감이 없는 마법 같은 시간들.
이야기를 하며 걷고 또 걷다 보면 아침이 왔고 세상은 어제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그땐 어디든 주저앉아 이야기할 수 있었고, 베고 누울 수 있는 백팩만 있으면 하늘을 바라보며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나기도 하고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한다. 그 긴 시간을 어떤 말로 채웠던 것일까. 그때 바라보던 불빛들 중 어느 것도 내 것이 되지 않았지만 그땐 그게 다 내 것 같았다.
진정한 사랑이라 부를 만한 것이 일생에 단 한 번만 찾아온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랑과 인연에는 고유한 색과 감촉이 있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면서 무턱대로 끌리는 감정은 첫사랑뿐이다. 미처 다 알지 못한 감정의 진폭, 그래서 더 서투르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마음, 지나고 나서 아릿하게 기억되는 아픔까지. 첫사랑이 제일 아름답진 않았지만 자꾸만 깊게 파고드는 기억으로 남는 이유다.
우리가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 우리의 삶은 현실에 맞닿아 있지 않고 강 건너 다른 세계에 있었다. 시간이 멈추고 하늘이 땅에 닿아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것이던 신성한 걸 내어 주는 그곳에.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보았다.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확인되었을 뿐.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안드레 애치먼, 30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