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고슴도치에게 적절한 거리를 심어주는 것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한때 나는 막연히 강해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때 생각했던 강함이란 누군가에게 의존하지 않고 의연하게 흔들리지 않고 내 삶을 살아가는 어떤 자세나 태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 역시 그러하듯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불안했다. 나라는 사람의 모습을 타인을 통해서 비춰볼 때,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계속해서 자라났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나온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외로웠다.
그 전에는 항상 어딘가에 속해 있었다. 돌아갈 집이 있었다. 내가 부러 신경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굴러가는 일상이 있었다. 그 수레바퀴에서 벗어나길 간절히 원했지만 막상 벗어났다고 생각한 순간 길을 잃은 것처럼 불안했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모두와 헤어져야 하는 시간, 사면의 벽과 마주해야 하는 시간이 두려웠다. 그래서 누군가를 붙잡고 밤새도록 이야기하거나 술을 마셨다. 술자리엔 항상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는 그 속에 답이 있기라도 할 듯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은 그냥 듣는 척했던 것 같다. 막상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신기했다. 무언가를 그토록 확신에 차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야기들을 듣고 내 안에 채우다 보면 나도 뭔가를 향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열심히 듣고 보고 읽다 보면.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무언가 부족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말들을 들여다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이었다. 진짜 나와 내가 원하는 나 사이에 건널 수 없는 강이 흘렀고 진짜 나를 자꾸만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든 나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없이 많은 자기 검열 안에 갇혀 있을 때가 많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가를 반복한다. 나는 그중에서 하나의 말을 선택해서 글로 옮길 뿐이다. 망설이는 말들 속에 그려지는 마음이 있다고 믿으며.
내 안의 나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본질적인 부분을 바꾸려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건 바꿔야 할 부분, 더 나아져야 하는 부분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떤 것이란 걸. 그러고 나니 틈이 생겼고 그 틈 사이로 여유가 흘러들어왔다. 내 안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눈에 들어왔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놓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렵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혼자 있으면 사람이 그립고, 사람들 틈에 있으면 혼자가 되는 시간을 간절히 원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토록 원하던 강함을 조금씩 키워가는 중이다.
이슬아 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유진목 시인 인터뷰에 나오는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된다는 것을 읽으며 그 시절 내가 원했던 강함이 실은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드러나는 자신을 뾰족하게 만들어서 아무도 쉽게 다가오지 못하게 하는 강함이 아니라 내 안의 가시를 인정하고 그 가시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 그 가시에 내 주변 사람들이 찔리지 않게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 그래서 두려움 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이 되는 것.
자기 스스로의 신이 되는 일에 대해 나는 자꾸 생각했다. 우리 각자에게는 아주 작은 전지전능함이 있다. 겨우 그것만 있거나, 무려 그것이 있다. 선생님이 소심한 전지전능이라고도 말했던 그것.
한집에 있기 좋은 사람이 되는 것. 남의 좋음을 나도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것. 혼자서도 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의 보호자가 되는 것. 그러다 혼자가 아닌 사람이 되는 것. 사랑하는 이의 이름을 망설임 없이 부르는 것. 노브라로 무대에 서는 것. 미래의 내 눈으로 지금의 나를 보는 것. 닮고 싶은 사람들의 모습을 따라 밥을 먹는 것. 사랑 속에서 아무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낮과 밤을 보내는 것. 기쁨과 슬픔이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셔터를 내리는 것. 떠나는 것. 불행한 시간에 굴복하지 않는 것. 때로는 삶에 대해 입을 다물며 그저 계속 살아가는 것. 울다가 웃는 것.
깨끗한 존경, 이슬아, 유진목 시인 인터뷰 중에서, 1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