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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드러내는 법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아서

by 나날
이 일을 기억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


우리가 자신의 상처를 쉽게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고유한 상처를 타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설프게 드러냈다가 그게 나의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그렇다. 내밀한 상처를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때때로 상처를 남에게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나 혼자만 들여다 볼 수 있는 문도 꽁꽁 닫아두고 살아가게 된다. 그러다 보면 그 상처는 그런대로 잘 아물었거나 극복한 것처럼 여겨지고 그렇게 또 잊고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툭 터져 나온다. 레고 블록처럼 하나하나 견고하게 맞춰가던 일상에 한 조각 구멍이 생기고 그 구멍을 무엇으로 어떻게 메워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한동안 멍하게 그 구멍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구멍의 뿌리를 더듬어 나가게 된다. 인생의 지나간 한 챕터에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넘어가버린 퍼즐이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떻게 해서도 찾을 수 없는 퍼즐 조각.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퍼즐 조각은 이제 와서 다시 찾을 수 없다. 그저 거기에 그 조각이 비어 있다는 걸 바라보게 된다. 신기하고 고맙게도 거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지금으로 돌아와 구멍 난 벽을 채울 레고 조각을 찾으러 애쓰게 된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 색이 다를지라도, 주변의 블록과 조화를 이루지 않더라도 애쓰다 보면 구멍에 다른 블록을 쌓고 다음으로 넘어간다.


중요한 건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을 바라보고 있다가 어떻게 지금으로 돌아오게 되는지다. 사람마다 다른 비밀의 열쇠를 갖고 있다. 툭 불거져 나온 상처와 잃어버린 과거의 조각에서 어떻게 다음으로 넘어가는지. 혼자 어떻게든 넘어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해받지 못할 타인에게 말해봤자 잃어버린 조각이 무엇인지 알려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맞는 말이다. 누구도 그 비어 있는 퍼즐 조각이 무엇인지 내 대신 알려 주거나 찾아 줄 수 없다. 그 퍼즐의 그림은 오로지 나만 알고 있으니까. 복잡하게 얼기설기 얽혀 있는 무늬와 그림 혹은 글자들.


그러나, 내 경우를 돌이켜보면 혼자 어떻게든 넘어가려 했을 때 나는 단지 그 비어 있는 조각을 외면한 것에 불과했다. 거기에 빈 조각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않으려 다시 묻고 또 묻고 의식이 저 아래 지하실에 쌓아두었을 뿐이다. 어설프게나마 그 조각을 찾고 표현하려고 할 때 비로소 거기에 빈 조각이 있었다는 걸, 그게 정확하게 어떤 그림인지 모르지만 그 빈 조각 때문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문제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퍼즐 조각이 무엇인지 다시 누군가에게 전달하려 애를 쓰다 보면 정확히 그 조각은 아니겠지만 무엇이었는지에 가까운 조각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멈춰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이해받지 못할지라도, 환상에 불과할지라도. 말로 하면 나를 초라하고 형편없고 너절하게 만드는 상처일지라도.


최근에 그 잃어버린 조각이 갑자기 떠오른 적이 있다. 그 조각이 무엇이었는지 파고들어가다 보니 이게 아닐까 싶어서 툭 내뱉었다. 마치 오늘 먹은 점심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보니 그건 분명히 이물질이 맞았다. 그런데 생각만큼 기괴하고 뒤틀린 것은 아니었다. 내일 점심에 또 이물질이 나오지도 않을 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의 상처를 타인이 이해할 거라는 건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 이물질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나의 상처를 말하려 노력하고 싶다.


나 역시 타인이 무심코 드러낸 상처에 내가 무리해서 퍼즐 조각을 맞춰주기보다 그 빈 곳을 찾아가는 걸 바라봐 주려 한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드러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내가 섣불리 다가갈 수는 없지만 옆에 있다는 신호만으로 누군가는 멈추지 않고 그 길을,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으려는 여정을 계속할 수 있으니까.



지금도 나는 강이 그 말을 했던 사실을 떠올리면 목구멍이 뜨거워지는데 그것은 그가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 그에게만 어렵게 드러냈던 나의 연약한 부분을 너무도 무심한 방식으로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일을 기억할 때마다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진실이다. 정상적인 형태의 행복이라는 관념이 허상일 뿐인 것처럼. 물론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나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백수린, 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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