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하는 이들을 많이 만들기

언젠가 다가올 나중을 위해

by 나날

나에게도 머지않아 다가올 것이다. 마흔이란 나이가. 지금까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다가올 것이다.


마흔이라고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그 정형화된 이미지가 서글픈 것은 주름도 흰머리도 아닌 지친듯한 눈빛 때문이다. 불혹.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게 된다는 그 나이는 바꿔 말하면 어떤 것에도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닐지 괜한 두려움이 앞선다. 스무 살의 나는 쉽게 미혹되지 않는 강함을 꿈꿨으나 세상사에 무심한 사람이 되길 바란 건 아니었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또랑또랑한 눈빛을 지녔던 사람. 보는 이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맑은 눈빛을 지녔던 사람.

고등학교 때 윤리 선생님 이야기다.

나는 하나의 재단에 남고 여고가 분리되어 있는 고등학교를 다녔다. 살면서 여자들로 그렇게 많이 둘러싸인 시간을 보냈던 건 그 3년이 유일하다. 그곳을 벗어나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라는 인생의 장을 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로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던 시기였다. 몸은 계속해서 성장을 거듭하고 우리를 둘러싼 현재의 것들은 모두 시시해 보였다.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주변의 어른들은 따분하게 여겼다.

그는 작은 체구에 항상 단정한 양복 차림이었다. 한 반의 1/4는 그를 내려다볼 수 있었고 1/2는 그와 비슷한 눈높이에서 이야기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부분의 선생님을 따분하게 여기거나 두려워하거나 딱히 중요한 무게감을 두지 않고 없는 사람인 것처럼 대했다. 뭐가 됐든 우리가 원하는 어른은 좀 더 아슬아슬하고 다이내믹한 어떤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앞에 서면 우리가 지나온 소중한 시절을 보내는 아이를 대하듯 조심스러웠고 그가 가진 어떤 것을 지켜줘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그의 담당 과목이 윤리여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의 눈빛이 우리를 지나가면 우리는 한때 자신의 순수했던 시기를 떠올리게 만들곤 했다.

아무튼 맑디 맑은 눈빛이었으니까.

들리는 얘기로 그는 마흔 초반의 나이였다.


입시를 앞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우리에게 윤리라는 과목은 수업을 안 들어도 그냥저냥 먹고살 만한 교과였다. 동서양의 현자, 철학자, 윤리학자들이 교과서에 등장했지만 정작 그들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기보다 교과서에 나온 워딩만 기계적으로 암기했다. 물론 그 시절에 그랬다는 얘기다. 요즘은 어떤지 잘 모른다.


어느 챕터 수업이었는지, 어떤 맥락에서 나온 이야기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여느 때처럼 살짝 긴장을 풀고 수업을 듣고 있었다. 때때로 나는 수업 중에 고개를 숙이지 않고 눈을 아주 조금만 감고 옅은 잠에 빠지곤 했기 때문에 그날도 그랬는지 모른다. 어쨌든 앞뒤 맥락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가 "사후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 밖에는.


"그런데 여러분(그는 수업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학생들에게 경어를 썼다), 사후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사후 세계는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그 순간 나뿐만 아니라 느긋하게 수업을 듣던 다른 아이들의 주의가 집중되며 교실의 공기가 아주 잠깐 바뀐 것을 기억한다. '음? 사후 세계? 지금 저 선생님이 사후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공기가 바뀐 것을 그도 느꼈는지 그는 안 그래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층 더 빛내며 두 손까지 모았다 펼쳤다 하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저는 사후 세계를 알고 있습니다!"

'지금 뭐라는 거야?'

"네? 어떻게요? 말도 안돼요. 음? 진짜?"

처음엔 장난으로 여겼는데 살짝 뜸을 들이자 거기에 정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만 같았다. '진짜 뭔가 체험을 한 건가? 에이 설마. 근데 왜 저러지?'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궁금증은 살짝 달아올랐다.


"궁금한가요? (잠시 침묵) 자, 제가 만약에 지금 이 자리에서 죽는다고 해 보죠. 세계는 어떻게 될까요? 그대로 흘러가겠죠? 다시 아침이 오고 흐르던 강물도 그대로 흐르고 생명이 있는 것들은 그대로 생명을 이어가겠죠. 네! 바로 이게 사후 세계입니다. 사후에도 세계는 그대로 흐른다.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나요? 생각해 보니 그렇죠? 네, 그런 겁니다. (해맑은 눈웃음)"


맥이 빠졌다. 그럼 그렇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수업에서 인상적인 장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바로 그 장면 딱 하나이다.



그림책이 있는 카페로 피서를 갔다. 요시타케 신스케 작가의 <이게 정말 천국일까?>라는 그림책에 손에 들었다. 주인공 아이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수첩을 발견한다. 그 수첩에는 죽기 전 할아버지가 천국은 어떤 곳일까 생각해 온 이야기와 그림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들이다. 천국에 갈 때 내가 원하는 복장, 나의 수호천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비석의 종류,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 같은.


그러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죽고 난 이후 천국이 아닌 이곳도 상상해 본다.

(내가 죽고 나서)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방법

- 달이 되어
- 상처 딱지가 되어
- 사과가 되어
- 지나가는 아기가 되어

이게 정말 천국 일까, 요시타케 신스케 글 그림, 고향옥 옮김


아직 엄마 아빠 외에 다른 유의미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아이는 하루 종일 집에서 아빠 엄마만 보다가 잠깐 외출을 하면 유심히 낯선 타인을 쳐다본다. 매우 집중해서 뚫어져라. 어느 순간 정신을 차리면 낯선 사람들이 아이를 보며 방긋 웃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리기도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아이가 눈도 깜빡이지 않고 빤히 쳐다보니 자신들도 모르게 무장 해제가 되며 그 눈빛에 화답하는 것이다.


이게 정말 천국일까, 그림책 페이지의 일부분




그림책의 저 페이지를 읽는데 그런 상상에 빠져들었다. 정말 아이의 눈을 통해 사랑하는 이들을 지켜보는 것일까.

그러다 십 년도 더 전의 윤리 수업 시간이 떠오른 것이다.

사후 세계는 바로 지금 여기라고 말하는 눈빛이.


지금 사랑하는 것들을 많이 만들고 싶어 졌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혹은 생명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이라도.

사후 세계에 사랑하는 이들을 더 많이 지켜보는 상상을 하며.

굳이 사후가 아니라도 언젠가 다가올 나중을 위해.


keyword
이전 19화여름, 사랑이 시작되는 계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