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기
1995년 3월 20일 일본 도쿄의 출근시간 통근 전차 안. 여느 때와 다름없이 월요일 출근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철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어지러움과 호흡 곤란을 느끼고 급기야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원인은 '사린'이라는 유독가스. 이 가스를 통근시간 전철 안에 불특정 다수를 노리고 살포한 사람들은 옴진리교라는 종교의 간부급 신자들이었다. 13명이 사망했고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5000여 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출근길에 오른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보도를 접하고 공간이 뒤틀리는 듯한 당혹감과 위화감을 느낀다.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만큼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옴진리교와 교주 아사하라 쇼코에 대해서. 그러나 무라카미 하루키가 진짜 알고 싶었던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직접 그 이야기를 듣고 문장으로 바꾸고 책을 엮기로 결심한다. 바로 그날 그 지하철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사람들 개개인의 이야기 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날 그 일과 관련된 62명의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문장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낸다. 그 책의 제목은 <언더그라운드>. 이 책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갑자기 평범한 생활과 생명까지 위협하는 일을 겪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들이 그날 그곳에서 경험한 것을 그들의 기억에서 퍼올려 언어화한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무엇을 경험했는지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어떻게 기억하는지 그리고 그 기억이 현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가 중요하다. 같은 전철에서 같은 시간에 비슷한 차림새로 출퇴근을 하지만 개인의 삶은 모두 고유하다. 그들이 그날을 기억하고 말로 표현하는 과정을 통해 사건 이후의 삶을 그들 스스로 바라보게끔 만든다.
책에는 2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일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이 그날을 기점으로 전후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을 읽어 내려가며 자연스럽게 내 삶 역시 돌아보게 됐다.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 중 나와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든 이야기가 있다. 바로 사건이 발생한 지하철에서 30년 넘게 일한 50대 역무원의 이야기다.
그는 사건이 발생한 95년 3월 20일로부터 정확하게 34년 전 같은 날 입사해서 줄곧 역무원으로 일해왔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그는 그날 사린이 든 봉지를 동료들과 함께 치웠고(당시에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정체를 알지 못했다)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던 동료 두 명을 잃었다. 그 역시 심각한 상태였지만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었고 적어도 인터뷰 시점(사건 발생 후 약 1년 뒤)에 완전히 치유되지 않았다. 그 기억의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그는 스스로 피해자라는 의식을 버리고자 한다. "나는 피해자가 아니라 체험자이다."라고 되뇌며 남은 날을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사건 직후 원인모를 강렬한 분노에 휩싸여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곤 했지만 오히려 그 후에는 가해자인 옴진리교를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옴진리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풍토를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간 일하며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 중에 인간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역무원이 빗자루와 걸레로 청소를 하는데 바로 그 자리에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 이들의 눈에 세상은 어떤 색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인간에게 절망하지 않는다. 첫 전차를 타며 늘 인사를 나누는 오십 대 남자 승객이 그가 복귀하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직도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것이지요. 힘내세요." 그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모든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열심히 살아봅시다."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축복과 격려.
인터뷰 마지막에 그는 이 말을 덧붙인다.
"그런 관계에서는 결코 미움이 생겨나지 않습니다."
그의 마지막 문장을 읽으며 "미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한 미움을 쌓아가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러다 보니 결국 그런 미움들이 내 안에 쌓여 자기 염오로 바꿔가는 것은 아닌지.
최근 스스로 깜짝 놀라는 경우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알지 못하는 타인에 대한 미움. 길거리에 쌓여있는 담배꽁초나 제대로 분리되지 않은 재활용 쓰레기를 볼 때 누군가의 그 무신경함애 나도 모르게 마음이 울퉁불퉁해진다.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미움이 생겨나는 나 자신을 볼 때마다 스스로 놀란다.
다른 하나는 서로에 대한 미움이 넘쳐나는 뉴스를 볼 때이다. 약하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사회적으로 자기보다 약자라고 생각하면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우리는 왜 서로가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날을 세우고 미워하고 그 미움이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삶을 사는 것일까. 그 속에서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나뿐인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축복하고 서로의 일을 격려했으면 좋겠다. 방향을 알 수 없는 미움이 번져 결국 자기 스스로도 불행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