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급자족의 삶을 꿈꾸는 프랑스 남자
저희 남편은 취미가 없습니다. 다른 프랑스인들을 보면 취미가 하나는 있던데 남편은 아닙니다. 악기를 연주하지도, 그림을 그리지도 소설을 읽지도 않습니다. 티브이도 잘 보지 않습니다. 저랑 연애할 때 영화관은 다녔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발길을 끊었습니다.
사교 활동을 즐기는 것도 아닙니다. 친구들과 외출하는 일은 일 년에 세 번은 있을까 합니다. 프랑스의 국민 사교 스포츠 페통(pétanque)을 하는 모습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 남편이 끊임없이 연구하는 단 하나의 관심사가 있으니 그건 자급자족의 삶, ‘프랑스판 나는 자연인이다’입니다.
남편이 귀티 나게 생겼다는 말을 한 열 번쯤 들은 것 같습니다. 콩깍지가 아니라 진짜로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는 코웃음을 칩니다. 손에 물 하나 안 묻힐 것 같은 모습으로 어쩌다 태어났을 뿐 노트북보다 도끼가 더 익숙한 남자라는 걸 저는 아니까요.
자급자족 삶에 한해서 남편은 항상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이 넘칩니다. 어느 날 직접 돼지를 키워 소시지를 만들겠다며 돼지를 데려오고, 인터넷에서 우즈베키스탄 화덕 영상을 보더니 직접 그 화덕을 만들었습니다. 재차 말하지만 수제 ‘피자’가 아니고 수제 ‘화덕’입니다.
집을 화석연료가 아닌 나무로 데우겠다고 선언하고는 친구의 친구 집에서 60년대 화로를 구입해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장작을 태워 라디에이터를 데우고 화로 위에서 요리도 할 수 있는 우리나라로 치면 아궁이 비슷한 것입니다. (이름: 후르노 부이여 fourneau bouilleur) 저는 지금 남편의 진두지휘 아래 아궁이를 집 거실에 두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의 관심사는 묘하게 남자들에게, 특히 형님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남편이 새로운 일을 벌이면 주변 남자들이 구경하러 옵니다. 한 번 저희 집에 난로가 터지는 사고가 있어 소방차가 출동한 적이 있습니다. 혹시 모를 후속 사고를 대비해 난방 회로 점검을 한 후 소방관이 후르노 부이여(fourneau bouilleur)에 대해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소방 팀 전원이 흥미롭게 남편의 나무로 집 데우기 프로젝트를 듣고 돌아갔습니다. 남편은 그날 소방관 형님의 관심을 끈 것에 흡족해하며 잠에 들었습니다.
솔직히 덧붙이자면 이런 거 할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남편에게 불만을 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가지를 긁으면서도 알고 있습니다. 다른 얄궂은 취미 있는 것보다는 이게 낫고 여자보단 남자한테 인기 있는 편이 좋다는 것을요.
남편 덕에 뜻하지 않은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집 앞에 자란 정체 모를 식물이 ‘죽은 사람 머리(champignon tete de mort)’라는 이름을 가진 버섯인 걸 알고 구워 먹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숲 속의 캐비어’라고 불리는 버섯 셉(CÈPE)을 한 바구니 따와서 냉동실에 얼려두었습니다. 집 천장에 1미터 크기의 벌집을 발견해 야생 꿀 이십 킬로를 짜내기도 했습니다. 집 뒤뜰에서 뛰놀며 자란 유기농 돼지는 넓적 다리 통구이가 되어 부활절 식탁에 올랐습니다.
프랑스는 농업이 발달한 국가로 식재료가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고급으로 여겨지는 것은 인간의 손이 최소한으로 닿은 유기농 식재료입니다. 숲 속에서 갓 딴 버섯이나 야생 꿀 같은 것은 그중에서도 더 귀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화가 되기 힘든 재료다 보니 아무리 대단한 재력가라도 원한다고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이것들이 집에 있는 동안만큼은 저도 부자가 된 기분입니다.
귀한 재료들은 아껴 뒀다 집에 놀러 오신 분들과 함께 먹습니다. 현대인은 자본주의 논리에 한 순간도 자유롭기 힘듭니다. 쌀 한 톨, 물 한 잔도 시장을 거쳐 제 손에 들어옵니다. 직접 구한 재료로 식사를 하는 순간만큼은 식탁에서 시장의 논리가 사라집니다. 식재료를 얻기 위해 움직인 나(남편)의 노력과 함께하는 사람만이 남은 시간입니다.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 얽히고 섥힌 복잡한 세상에서 단순함이야 말로 최고의 휴식입니다. 자연인과 결혼한 저, 이 정도면 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