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고 Oct 22. 2023

부르고뉴 시골집에서 풀과의 전쟁

식물이란 최상위 포식자

*이 글이 쓰인 시기는 올해 4월 봄입니다



 오늘 저는 덩굴을 뜯었습니다. 벽에 난 덩굴을 뜯기 시작한 건 삼주 전부터입니다. 이웃이 잔디깎이 트랙터를 타고 지나가다 저희 집 앞 풀을 깎아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초봄에 덩굴을 뜯어내야 벽이 안 상한다고 조언을 던지고 간 게 계기였습니다.


봄, 인간과 식물이 자리 싸움하는 계절


 덩굴은 손으로 잡아당기면 두두둑 뜯어지는 거 아닌가 쉽게 생각했던 게 오산이었습니다. 최소 백 살은 되어 보이는 이 덩굴은 줄기가 굵어지다 못해 나무가 된 상태입니다. 이리저리 설킨 덩굴을 헤집고 뿌리를 찾았더니 이미 잘려있습니다. 오래전 이 집에 살았던 누군가 뿌리를 잘랐던 것 같습니다. 이 무시무시한 식물은 뿌리가 잘렸음에도 죽지 않고 덩굴을 뻗어 나간 것입니다.


 돌처럼 딱딱해진 덩굴 몸통 부분을 칼로도 잘라보고 톱질도 해봤습니다. 그래도 떨어지지 않아 결국 도끼를 꺼내 들었습니다. 한 번 시작하니 중간에 끝내기도 찝찝합니다. 삼주 간 시간 날 때마다 도끼질을 했습니다. 많은 진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벽과 반(半) 일체 된 부분은 떼어낼 수 없었습니다. 벽 안의 흙과 물을 양분 삼아 덩굴은 다시 자랄 것입니다. 네, 삼주 간의 사투 끝에 덩굴이 이겼습니다.



덩쿨 줄기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오만한 생각 


 봄에는 각자 자기 집에 자라는 풀 뽑느라 바쁩니다. 저에게 덩굴을 뜯으라 조언을 해줬던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도가 막힌 것 같은데 우리 집도 그런가 하고 물어보는 전화였습니다. 수도 이야기는 이분 정도 하고 서로 집에 풀 뽑는 이야기를 더 한 거 같습니다. 그 집은 가시나무가 문제라네요. 가시나무도 무시무시한 식물입니다. 사방에 뿌리를 내리며 자라는데 가시 때문에 뽑을 때 아프기까지 하거든요.


 유럽의 겨울은 우울합니다. 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겨울 내내 보슬비가 내립니다. 흐린 날씨는 10월 중순부터 시작해 5개월 정도  이어집니다. 그러다 4월 즈음 구름 천장이 드문드문해지고 햇살이 비추기 시작합니다. 그런 날에는 바깥으로 뛰쳐나가 등받이 의자에 눕습니다. 삶의 은총이라는 게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야생 동물도 햇살을 찾아 바깥 활동을 시작하고 식물도 수그렸던 머리를 들고 위로 옆으로 뻗어갑니다. 황홀함은 순간입니다. 곧 인간과 자연의 자리싸움이 시작됩니다.


 저는 자연이란 평화롭고 안녕한 존재라 생각했습니다. 회색 도시 안에서 바라보는 자연이 만드는 초록 공간은 저에게 휴식의 공간이었습니다. 시골에 살고 나니 다르게 보입니다. 식물이야 말로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를 개간해 살아가는 세입자일 뿐입니다. 자연을 보호한다니 얼마나 거만한 말인가요. 인간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지나친 개발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인류를 향한 재난입니다. 인류가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자연은 남아 살아갈 것입니다.



우물 면도 전(왼족) 후(오른쪽)
집 앞 화단이 풀 뽑기 전(왼쪽) 후(오른쪽)


식물이라는 최상위 포식자, 양과의 공생 관계


 작년 봄에는 남편이 직접 집 뒤뜰에 자란 풀을 잘랐습니다. 모터를 돌려 기세 있게 풀을 깎지만 며칠만 지나도 풀은 허리까지 다시 자랐습니다.  그래서 데려온 게 양이었습니다. 울타리 안에서 양은 풀을 1센티 정도만 남기고 모두 뜯어먹습니다. 양은 반려동물과 달라서 인간과 소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내어준 영역 안에서 자신의 힘으로 배를 채웁니다. 사육이 아닌 공생에 가까운 관계입니다.


 처음 양 두 마리를 데려왔을 때 이름을 붙여주지 않았습니다. 풀이 자라는 계절에 키웠다가 성체가 되면 도축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한 마리는 전선 사고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서 지난 겨울 저희 가족의 일용한 양식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할까요, 나머지 한 마리는 더 오래 볼 것 같습니다. 은퇴한 도축업자 할아버지께서 지나가다 덩치를 보더니 이렇게 큰 양은 처음 본다며 새끼 치는 걸 도와주시겠답니다. 지인의 농장에서 수컷을 소개해주기기까지 하셨습니다.


집 주변 부지 풀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양님



 새끼를 치는 건 노하우가 필요한 일이라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좋은 소식입니다. 두 양이 새끼를 만들고 그 새끼가 또 다른 양을 낳을 것입니다. 오래 볼 아이이니 이제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루(늑대)라고 지었습니다. 루가 집 앞으로 탈출했던 날 옆집에서 보고 늑대인 줄 알았다고 했던 게 기억나서 지은 이름입니다. 직접 보면 덩치도 크고 포쓰 장난 아닙니다.


 첫째 딸이 오늘 꽃을 한 바구니 뜯어서 루에게 밥이라고 갖다 줬습니다. 루가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습니다. 봄을 맞이해 자연과 공생하는 법을 배우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덩치로 이웃 사람들을 압도한 루
딸은 루를 돌보지만 루는 인간에게 관심이 없다





이전 07화 부르고뉴 '나는 자연인이다', 남편을 소개합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