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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Apr 21. 2023

아들 곁에서 곡예를 하는 아버지의 마음

부르고뉴 시골 마을에서 만난 가족 서커스단


이동 서커스단을 찾은 아이들

5년 전 프랑스에 왔을 때 일 년 간 또 다른 시골에 작은 아파트를 빌려서 살았습니다. 그때는 불어도 프랑스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시댁에서의 4개월 살아본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모든 것이 지금보다 많이 서툴렀습니다. 모든 시작이 그렇듯 막연하던 시간이었습니다.


시골 마을로 찾아오는 유랑 극단


그 시기에 있었던 몇 안 되는 좋은 기억 중 하나가 여름 행사입니다. 여름이면 유랑극단, 이동 놀이동산, 자동차 곡예단 등이 시골 마을을 찾아옵니다. 나름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셈입니다. 이 여름 축제를 두 가지로 나눠보면 이렇습니다. 먼저 더운 날씨 생맥주와 로제 와인을 마실 빌미를 제공하는 음악회 같은 행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서커스 같이 어린이를 겨냥한 이벤트가 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면 부모는 따라오기 마련이니까요. 지난 주말 저희도 집에서 차로 십분 거리 시내에 서커스단이 왔다고 해서 보러 갔습니다. (*이 글이 쓰인 시기는 22년 여름입니다)


유랑 서커스단의 공연 전 모습


지난가을에 이사를 했기 때문에 부르고뉴에서 여름을 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본격적인 여름 축제 기간이 시작되는구나 설레었습니다. 관객수는 150명 안쪽으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두 딸이 곡예와 운영을 겸업하는 작은 서커스였습니다. 남이 하는 고생을 누가 돈을 주고 보러 가지 의아하였었는데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납득이 갑니다.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서커스가 존재하는 거구나 싶습니다. 저희 딸 사랑이도 두 시간 동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정말 좋아했습니다.


천막 바깥에서 동물을 구경할 수 있다


아이들은 모르는 가족 서커스단의 애환


그러나 저는 서커스 내내 미묘한 감정을 느꼈습니다. 저 천막을 설치하고 해체했을 과정, 동물을 돌보고 훈련하는 일, 평생 이동하며 살아가며 겪었을 가족의 회환 이런 것들은 아이들은 모르는 어른의 사정입니다. 보이지 않는 수고의 규모에 압도되는 내가 우습게 아버지와 자식들은 별다른 안전장치 없이 모든 곡예를 해냈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딸들이 순식간에 유니폼을 갈아입고 솜사탕을 파는 기막힌 조직력을 보여줬습니다.


무엇보다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광대 역할을 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곡예를 하던 아버지였습니다. (심지어 곡예를 하기에 덩치도 크셨습니다 ). 차마 이분이 위험한 곡예를 할 때는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의자 두 개를 잡고 물구나무서기를 한 사진이 있습니다. 저기에 의자를 세 개 더 쌓아 물구나무서기를 하셨습니다.  훈훈하게 기억될 수도 있던 가족 서커스단에 제가 삼일 째 경탄하고 있는 이유는 그때 아버지가 보인 얼굴 때문입니다.


아들이 의자를 하나씩 쌓으면 아버지가 그 의자 위로 오릅니다. 광대의 웃음은 점점 사라집니다. 천장에 가까워질수록 조명의 열기는 타오르고 얼굴에 흘러내린 땀에 화장은 지워져 내립니다. 순간의 정적이 흐르고 비틀거리는 낡은 의자 위로 이 나이 든 아버지가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 그 모습은 가장의 모습을 넘은 예술인의 경지로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곡예 중인 아들과 아버지


곡예를 하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


집에 돌아오고 저는 계속 의문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을 겨냥한 유랑 서커스단에 굳이 그 정도로 위험한 곡예가 필요했을까요. 의자 네 개만 쌓았어도 아이는 좋아하고 어른은 감탄했을 것입니다. 의자 네 개로 한 곡예가 한 가장이 가진 책임감의 미장센이었다면 마지막에 쌓아 올린 의자는 한 남자의 기백이었습니다. 그 밑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은 어떤 기분일까요. 그런 아버지와 함께 자라는 것은 또 어땠을까요.


저는 남자 형제만 셋입니다. 농담으로 저는 더 이상 남자에게 궁금한 것이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아빠의 중년과 노년, 오빠의 청소년, 동생들의 유년기 그리고 남편의 청년기까지 지켜봤으니 남자의 일생을 한 번 훑어본 기분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남자를 잘 모르겠습니다. 가족, 특히 아내는 남편이 저런 곡예를 고집하는 것에 불만이 많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미련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수컷의 마음.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저는 집에 돌아와서 울었습니다. 내 아버지가 생각이 나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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