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의 방에 걸린 초상화를 보며
첫째 아이 돌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줄 테니 남편과 외출 다녀오라고 제안을 하셨습니다. 생각해 보니 시기에 남편과 파리에 한 번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딱 팬데믹 1년 차였는데 파리 관광지들이 텅 비어 있었거든요. 그렇게 남편과 저는 파리로 향했습니다. 목적지는 베르사유 궁전과 루브르 박물관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시 안의 작은 아파트를 2박 3일간 빌렸습니다. 숙소에서 걸어 찾아간 베르사유 궁전의 입구는 한산했습니다. 줄 한번 서지 않고 티켓을 끊어 들어가 보니 띄엄띄엄 사람들이 다니긴 했습니다. 이전에는 관광객들에 치여 보지 못했던 벽 장식들이 보였습니다. 궁전의 긴 복도를 사람 없이 나 혼자 걷기도 했습니다.
군중이 없는 베르사유 궁전을 걸으니 이곳이 관광지이기 이전에 왕과 왕비가 살던 집이라는 게 실감 났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왕비의 업무를 피해 사생활을 보내던 공간은 의외로 소박하고 정갈했습니다. 방에는 왕비가 아이들과 함께한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여성 화가 비제 르 브룅의 작품이었습니다. 초상화에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이 가득합니다. 그 시대에도 엄마는 엄마였겠지요. 브룅이 자신과 딸을 그린 초상화는 그 다음날 루브르에서 만났습니다. 최고의 워킹맘이었던 두 여성은 서로에게 공감대를 느끼고 우정을 쌓았을 것입니다.
두 여성을 엄마로 둔 아이들은 어땠을까 궁금해졌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딸 마리 테레즈는 엄마를 그리워했던 것 같습니다. 끝까지 왕가의 복귀를 꿈꾸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나폴레옹이 ‘부르봉 왕가에 남은 남자는 그녀뿐(대장부라는 뜻이겠지요)’이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였다고요.
브룅의 딸 줄리의 일생도 찾아보았습니다. 브룅과 줄리는 프랑스혁명 후 함께 여러 나라를 망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브룅과 딸의 관계는 그리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브룅은 줄리가 자신의 뒤를 이어 프랑스 귀부인으로서 살기를 바랐습니다. 망명 중에도 딸의 교육에 힘썼습니다. 그러나 줄리는 신분이 낮은 러시아인과 결혼을 강행했고 후에 이혼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직전까지 인연을 끊고 살았습니다.
당시 결혼이 여자에게 어떤 의미였나 생각해 보면 줄리는 브룅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을 한 것일 겁니다. 뒷이야기를 듣고 다시 브룅이 그린 초상화 속 줄리를 봅니다. 그림 속의 줄리는 그저 엄마를 사랑하는 예쁜 딸입니다. 브룅은 딸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읽지 못했던 것일까요. 저희 딸도 저를 지금 엄청 사랑하는데 커서는 저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게 될까요.
예나 지금이나 엄마가 딸을 제일 모르는 거 같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저희 어머니가 생각이 납니다. 저희 어머니도 제 마음을 별로 몰라줬거든요.
사실 저는 엄마랑 성격이 별로 안맞습니다. 엄마와 친구같이 지내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 걸 보면 신기하면서도 한 구석에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딸이 엄마의 가치관에 많이 맞춰주고 있겠 지라고요. 저는 성격이 막돼먹은 탓인지 엄마의 가치관에 매번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그런 제가 엄마는 어리 동절 한 것 같습니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굉장히 충실하셨으니까요.
엄마의 가정환경은 그렇게 화목하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의 많은 엄마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요. 친척들은 도시로 떠나고 엄마만 집성촌에 남아 외롭게 크셨다고 합니다. 가장 벗어나고 싶어 한 공간은 시골이었습니다.
엄마에게 시골은 누추하고, 후진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도시적인 세련된 여자가 엄마가 꿈꾸던 이상향이었습니다. 세상에 많은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엄마도 딸이 그 꿈을 대신 이뤄 주길 바랐습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하필 태어난 게 나였던 것입니다.
저는 도무지 엄마의 바람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갖추어진 세련된 공간보다 자연스러운 공간이 좋았습니다. 앉아서 하는 일보다 손으로 하는 일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집안일로 거칠어진 자신의 손을 부끄러워하던 엄마가 기억납니다. 어린 내 손을 보며 부드러운 손이 너무 보기 좋다고 했습니다. 저 눈에는 엄마의 손도 충분히 예뻤는데 말이지요.
그러나 엄마의 미학은 저의 미학이 아닙니다. 평생 코스프레를 하고 살아가기에는 인생은 길고 피곤합니다. 저는 이것을 ‘탈집 탈모론’이라고 부릅니다. 탈집은 물질적 독립, 탈모는 정신적 독립을 이야기합니다. 엄마가 원하는 딸이 되는 것을 내려놓고 포기하는 순간입니다.
엄마는 그런 제가 되바라지었다고 합니다. 그걸 한 귀로 흘리면서 저는 억울합니다. 엄마가 끝까지 알아채 주지 않는 사실 때문입니다.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 딸은 없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행동을 하려고 노력해보지 않았을까요. 그것에 한계를 느끼고 그만두었을 뿐입니다.
엄마가 되면 눈물이 많아진다고 합니다. 저도 딸을 낳고 많이 울었습니다. 엄마를 향한 나의 짝사랑을 딸이 저를 바라보는 눈에서 찾았기 때문입니다. 짝사랑이란 참 서글픈 일입니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을 짝사랑해도 서글픈데 엄마를 사랑하는 제 마음은 오죽했을까요. 줄리도 엄마를 죽을 때까지 열렬히 사랑했을 것입니다. ‘탈모’하고 ‘탈집’하는 과정에서 서로에 대한 진심을 잃어버렸을 뿐입니다.
‘모녀의 세계’를 쓴 김지윤 작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녀에 대해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만큼 사회가 관심이 없었던 관계여서 그렇다고요. 최근까지 남성 중심 사회였던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우리가 여태 모르고 지나쳐서 그렇지 모녀 관계란 원래부터 동상이몽의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베르사유 궁전에서도 엄마와 딸은 다투었을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 중에 엄마에 대한 감정이 고민이신 분이 있다면 이 글에 위안을 받았으면 합니다. 엄마와 딸은 원래 그런 관계인지도 모릅니다. 혹시 딸과의 불화를 겪고 서운해하시는 어머니가 있다면 딸을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그럼에도 딸이 가장 바라는 건 당신들의 사랑이니까요. 친구 같은 딸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어머님들이 있다면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너무 사랑하는 딸의 노력의 결과라는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