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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Apr 20. 2023

내가 사는 시골 마을, 프랑스 부르고뉴 이야기

남편의 사진첩을 보다가


 우연히 남편의 핸드폰 사진첩을 구경한 적이 있습니다. 집 주변에서 찍은 풍경 사진이 절반이고 가족사진이 절반입니다. 사진첩을 보면 그 사람의 시선이 보인다고 하지요. 풍경 사진 하나하나에 애정이 가득합니다. 남편에게 이런 감성이 있었나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저의 사진첩을 봤습니다. 아이들 얼굴로 꽉꽉 채워져 있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데 이렇게 시선이 다릅니다. 요즘 너무 아이들만 보고 산 것 같기도 합니다. 봄햇살이 찾아오기 시작한 집 앞 풍경을 봅니다. 넓게 펼쳐진 푸른 초원과 덩굴담이 보입니다. 오늘은 고개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제가 사는 이곳 부르고뉴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부르고뉴 소도시 Paray-le-moninal 의 성당

아름다운 옛 건물이 일상에 녹아있는 곳


 부르고뉴에는 성이 많습니다. 옛 영주가 살던 저택도 많아서 한 다리 건너 성이나 대저택이 있는 수준입니다. 그 이유는 부르고뉴가 곡창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한 세기 전만 해도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 부유한 지역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남서부는 그중에서도 소고기 산업이 활발했던 곳입니다. 당시 소고기가 가졌을 가치를 생각하면 상당히 많은 돈이 이 지역을 거쳐갔을 것입니다. 그 부유함이 이 지역에 많은 성을 짓게 했겠지요.


 그래서 부르고뉴에서는 아름다운 옛 건물들이 일상에 녹아있는 풍경을 쉽게 봅니다. 평범한 골목에 생뚱맞게 부티가 흐르는 오래된 시계가 걸려있다던가 우체국 건물이 쓸데없이 고풍스럽다던가 시청이 성으로 되어있다던가 그런 식입니다. 소 키우기에 적합하다는 푸르게 펼쳐진 초원은 이런 옛 건물들과 어울려 이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듭니다. 이를 보러 찾아오는 사람이 꽤 있어서 관광지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남서부 부르고뉴 소도시 La clayette의 시청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름다운 집을 가질 수 있다면


 하지만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현실은 현실이지요. 과거의 부유함과 다르게 오늘 이곳의 부동산 가치는 낮은 편입니다. 와인 농가는 현재에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반면에 소고기 농가는 예전 같지 않습니다. 같은 부르고뉴라도 와인이 생산되는 지역과 소고기가 생산되는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천지차이입니다. 다시 말해 제가 사는 곳은 아름다움에 비해서는 그렇게 비싸지 않은 지역입니다.   


남서부 부르고뉴의 초원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름다운 풍경과 집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사람들이 이 지역에 모이게 될까요? 은퇴한 노인들입니다. 다른 지역에 있던 집을 팔고 이곳으로와 노년을 보내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이곳에 있는 소도시 중 제일 규모가 큰  Paray-le-monial은 가톨릭 성지이기도 합니다. 예쁜 집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입해 성지에서 기도도 하고 비슷한 상황의 다른 노인들과 연대도 맺을 수 있으니 이상적인 실버타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시 안에 종합 병원이 있어 의료 시설도 있으니까요.


지루함과 싸워 이기는 법


 이렇게 조용하고 영적인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살 때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지요. 지루함입니다. 사람들이 지루하면 뭘 할까요. 남 이야기를 하지요. 이웃들끼리 모여 이 집 저 집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일상이자 삶의 낙처럼 보입니다.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안다는 게 이런 건가 싶습니다. 이사 온 지 일 년이 조금 넘었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 그간 온갖 남의 집 사정을 들었습니다.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웃끼리 소문을 공개적으로 말하기는 그렇고 이곳 시장의 이야기를 소개하겠습니다. 지역 신문에 소개된 공식뉴스니까 이건 괜찮겠지요.


부루고뉴의 지역 신문

 무슈 넴은 이십 년 가까이 이곳의 시장을 역임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그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시청에서 소유하던 성 하나를 처분했는데 그 성을 사려고 했던 사람이 소송을 걸었습니다. 그 사람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시청에서 제시한 가격에 성을 사겠다고 답변을 했는데 며칠 후 성이 다른 사람에게 팔렸습니다. 자신이 제시한 가격보다 훨씬 낮게요. 성을 산 사람은 무슈 넴의 친구였습니다. 대가를 받은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드는 상황입니다. 재판 결과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음이 인정되었고 그는 벌금형에 쳐해 졌습니다.


다르지만 그렇다고 크게 다르지는 않은 곳


 무슈 넴이 이런 식으로 소송에 걸린 게 이미 두세 차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지역사회에 평판이 안 좋습니다. 한 여성에게 이혼 중이라고 거짓말을 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무슈 넴이 무능한 건 아닙니다. 십 년 전부터 이 지역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유네스코 등재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질타를 받고 있는 그가 시장으로 재선이 될까요. 경쟁자가 마땅히 없어 재선이 될 거 같은 분위기입니다.


 무슈 넴에 관련된 의혹과 그의 (대다수 부도덕한) 행적을 들으며 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같다고요. 규모는 다르지만 지난 대선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어딜 가나 정치하는 사람들은 비슷비슷한가 봅니다.


 저는 이곳에서 이방인입니다. 외국인이 드문 곳이라 처음 이사 왔을 때 거리감은 더 크게 느껴졌지요. 사람들의 뒷(?)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모종의 친근함을 느낍니다.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습니다. 풍경이 다르다고 거기 사는 사람까지 다른 건 아닌가 봅니다. 지극히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제 고향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다르지만 그렇다고 엄청 다르지는 않은 곳. 이곳이 저와 저희 가족이 살고 있는 남서부 부르고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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