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시골에서 아이 학교 보내기
오늘 첫째 사랑이가 첫 등교를 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만 3세부터 의무 대상이라 학교에 갑니다.학교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 유치원과 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먹고 놀고 자고 집에 오는 거지요. 다른 점은 학교는 학교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꽤 단호하다고 할까요.
밥을 떠먹여 주는 사람도 없고 재워주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이가 처음으로 자신보다 단체가 우선이 되는 경험을 하기 때문에 사회로의 첫 걸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가 적응을 잘 할 수 있을지 부모들이 긴장감을 느끼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저도 그저께부터 아이 등교를 기다리며 꽤나 긴장했습니다. 첫 아이라서 그런걸까요. 한 번 걱정하기 시작하면 끙끙앓는 저의 소심함 때문일까요. 등교 아침날까지 오만 생각을 다했습니다. 어떤 옷을 입혀야할까. 예쁘지만 단정하게 활동하기 편한 옷이 뭐가 있을까. 내 억양 가득한 불어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학부모들과 대화하게 될텐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학교에 도착하니 교실에 아이들이 보였습니다. 시골의 작은 학교라 각 반에 10명이 안되지만 세 반이 모여 있으니 꽤 바글거렸습니다. 아이는 잠시 삐쭉거리다 교실에 있는 장난감을 보고 뛰어 들어갔습니다. 같은 어린이집 다녔던 친구들도 있어서 별탈 없이 어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분 정도 지났을까 학부모는 그만 나가야 한다는 공지가 있었습니다. 아이를 교실에 두고 저는 밖으로 나왔습니다.
남편이 둘째를 안고 있었기 때문에 제 두 손은 비어있었습니다. 걷는 게 이렇게 가볍게 느껴질 수가 있는 거였나요. 광주리를 바닥에 내려놓은 홀가분함으로 학교에서 걸어나왔습니다. 계단을 올라 주차장에 들어갑니다. 아빠 품에 안긴 둘째의 두 눈이 어깨 너머 저를 향합니다. 제 곁에는 첫째가 없습니다. 빈 팔을 허공에 저으며 저는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한 번 인사를 주고 받았던 딸 친구 엄마가 주차장에서 말을 걸어왔습니다. 남편이 제가 울어서 눈이 빨간 거라고 말합니다. 딸 친구 엄마가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괜찮다고 했습니다. 개인주의 국가 프랑스에서 타인이 내 머리를 쓰다듬다니. 당황한 마음과 동시에 멈췄던 눈물이 더 터졌습니다. 돌아가는 길 들린 빵집에서 할머니가 딸을 기억하고 첫등교는 어땠냐고 물어봅니다. 저는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다 또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저보고 뭐가 그리 슬프냐고 묻습니다. 이건 슬픈 거랑 별개의 눈물이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쯤되니 저도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무슨 눈물일까요? 몸의 반응은 의식의 반응보다 빠르고 정확할 때가 있습니다. 흘리고 본 저의 눈물의 이유에 대해 고민합니다. 누군가의 눈물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어린왕자가 장미꽃으로 가득한 화원에서 터트렸던 눈물입니다.
어린왕자 이야기는 모두 아시겠지만 기억을 되살리고자 해당장면을 말해보겠습니다. 어린왕자는 우연히 지구의 한 화원에 들어갑니다. 셀수 없이 많은 장미꽃이 널려있었습니다. 어린왕자의 별에도 장미꽃이 있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소중한 꽃입니다. 지구에 와보니 그꽃이 수많은 장미꽃 중 하나일 뿐입니다. 어린왕자는 화원의 장미꽃들 사이에서 눈물을 터트립니다.
‘헤어질결심’, ‘아가씨‘, ‘박쥐’ 각본을 쓴 정서경 작가의 이야기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시작할 때 주인공은 자의식 과잉의 상태입니다. 독특하고 매력있지만 사회와 소통에서는 멀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평범한 감정을 맞닦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세계에 타인을 받아들입니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장이란 특별함에서 평범함으로 가는 것이라고요.
특별함의 반댓말이 평범함이라면 자의식의 반댓말은 뭘까요? 자의식의 반대말은 삶입니다. 자의식의 세상에는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삶은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나와 큰 상관 관계 없이 삶은 그냥 흘러 갑니다. 삶은 그냥 사는 것입니다. 나의 세계에서 벗어나 그냥 살기 시작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성숙이라고 부릅니다.
‘여자‘라는 자의식을 잠시 내려두고 ‘엄마‘로 살기 시작한 지 4년 차입니다.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 모든 육아가 그렇듯이 여러 난관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일들이었습니다. 열심히 닥친 일들을 이겨내며 하루를 보내는데 고개를 들어보면 세상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키우며 힘든 이야기를 꺼내보기도 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있을 때는 엄청난 시련이고 고난이었던 것이 입 밖에 나오면 흔한 육아 푸념이 되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납득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애 키우는 건 제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니까요.
아이의 첫 등교날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아이는 제 손을 잡지 않고 혼자 교실로 걸어들어갔습니다. 이름 모를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는 딸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 저에게만 특별했을 아이와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분만실에서 얼굴을 보기 전에 먼저 들었던 울음 소리. 팔을 뻗어 처음 내 얼굴을 만지던 손. 빨래 건조대 밑에 앉아 엄마를 부르던 목소리. 첫 등교를 위해 책가방을 준비하는 진지한 얼굴. 나만 아는 특별함이라고 특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 벅차오름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4시 반 하교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라 앉히고 저는 아이를 데리러 갔습니다. 이번에는 남편 없이 둘째가 제 품에 안겨있습니다. 학교의 문이 열리고 아이가 밖으로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흥분 상태로 친구들과 놀았던건지 얼굴이 익어있습니다. 딸은 저를 보더니 딱히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손을 잡고 나가면서 엉엉 울기 시작합니다. 학교에서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와서 싫답니다.
아침에 엄마가 너를 보내고 벅차오름에 눈물을 흘렸던들 그게 딸에게 무슨 상관일까요. 딸도 자신의 삶을 살기 시작했나봅니다. 이제 딸과 저의 삶은 두 개가 되었습니다. 그 날 첫 등교를 한 것은 딸과 나 두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