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부르고뉴 고택에 산다는 것
C’est comment pour toi d’habiter au bout du monde?
집에 놀러 왔던 친구가 했던 말입니다. 리옹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소도시의 외곽에 사는 친구였습니다. 본인도 도시 사람 입장에서는 시골에 사는 건데 그 친구 눈에도 우리 집이 외진 곳이었나 봅니다.
C’est comment d’être une coréenne dans la vrais compagne française?
저희 집을 찾은 손님들에게 여러 번 들은 질문입니다. 프랑스도 예전과 비교하면 많이 변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천지가 개벽하는 도시 개발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 눈에는 미미한 변화이지요. 프랑스의 거리 풍경은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없어 보입니다. 그런 프랑스 사람 눈에도 우리 집은 변화를 겪지 않고 ‘프랑스다움’을 간직한 지역으로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말테우리 목장 같은 그런 느낌일까요.
변방에 사는 프랑스 사람에게도 외지고, 프랑스에 사는 프랑스 사람이 봐도 고전적인 곳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집입니다. 앞서 저희가 옛 농가를 찾기 시작한 이유 중 하나가 예산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름답게 지어진 집이 어째서 가치가 낮을까요?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전원 주택은 부동산 가치를 두 가지로 판단합니다. 하나는 부지의 가치고 하나는 건물의 가치입니다. 부지의 가치는 전체적인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따라 오르고 내립니다. 건물의 가치는 새로 지어지거나 리모델링 된 순간 가장 높았다가 시간이 흐를 수록 하락합니다.
부지는 자산이고 건물은 소비재입니다. 저희가 살고 있는 집은 마지막 리모델링이 2000년대에 있었기에 건물의 가치는 거의 소비되었고 부지의 가치만 남아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희가 크지 않은 예산으로 이 집을 구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건물이 오래되었다고 영원히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부수고 새로 짓는 편이 나은 집들도 있지만 재수리가 가능한 집도 있습니다. 저희 집 같은 시골 농가의 장점은 재수리를 하면 다시 건물의 가치가 오를 수 있는 좋은 뼈대를 갖추고 있다는 점입니다. 뼈대란 돌벽과 서까래 그리고 지붕을 말합니다. 철근과 콘크리트가 주 재료인 현대 건축으로는 재현하기 힘든 돌과 나무로 만든 틀입니다. 큰 틀은 옛 모습을 남기고 집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당장 살기에는 문제 없을 만큼 애매하게 노후한 상태인 것은 저희에게 행운입니다. 살면서 집을 고쳐 나갈 수 있으니까요. 지난 이년 간 꾸준히 집 공사를 했습니다만 앞으로의 프로젝트를 위한 준비 과정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소 십 년 동안은 계속해서 집을 수리해 나갈 것입니다. 중년 혹은 그 이상 노년이 되었을 때 원하는 집에서 살 수 있다면 지금의 젊음을 불태울만 하지 않을까요. 할 수 있을 때 몸으로 때워보자는 마음으로 조금씩 집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예상하는 집 수리 과정은 이렇습니다. 겨울 난방 효율을 높이기 위해 벽과 지붕에 단열재를 발라야 합니다.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것이 집의 첫 번째 역할이니까요. 노후 된 부엌은 재공사가 필요합니다. 거실에 부엌을 놓는 오픈 키친 형식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거실 벽에 발라져 있는 오래된 시멘트를 드릴로 때어 내 석회를 입힐 것입니다. 석회가 발린 벽은 습기가 차지 않아 집 내부 공기를 훨씬 더 아늑하게 만듭니다.
친환경 중앙 난방을 설치할 수 있다면 난방비도 절약되고 더 좋겠지요. 공기의 열이나 지열을 이용해서 집을 데우는 히트 펌프가 친환경 난방 시설로 유행이라고 하니까요. 바닥을 드러내고 밑에 온돌을 설치할 수 있다면 겨울을 더 따스히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기초 공사가 끝나면 지붕 밑 다락 공간을 방으로 개조할 것 입니다. 그때는 아이들도 각자 방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뭐든 말은 쉽지만 실제로 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언급한 공사를 다 하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시간이 들어갈지 저도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옛것을 좋아하는 프랑스인이지만 모두 고택에서 살고 싶어하지는 않습니다. 직접 고치는 것은 너무 고된 일이고 사람을 써서 고쳐도 골치 아플 일이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수백년 전 사람 손으로 지어진 고택은 내부에 어떤 문제가 있을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업자들마저 골치 아픈 고택 공사를 맡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신축을 선호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놀러갈 때는 고즈넉한 고택을 빌리겠지만 사는 것은 편리한 신축이 낫다는 의견입니다.
남편과 저는 기왕이면 아름다운 곳에 살고 싶다는 가치관이 맞았기 때문에 다행히 큰 의견 충돌이 없었습니다. 살아보니 외관이 아름다운 것만 고택의 장점은 아닙니다. 돌벽으로 된 집은 여름에 시원합니다. 외부와 내부를 차단하는 콘크리트 벽과 달리 돌벽은 숨을 쉬기 때문에 집 안 공기도 깨끗하고 좋습니다. 일반 주택에 비해 부지가 넓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자연에 가까운 삶에 가치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고택 수리는 고되지만 도전해 볼만한 일입니다. 에어컨과 공기 청정기가 편하긴 하지만 그 인위적인 공기가 즐겁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고택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인기있는 이유입니다.
언론 공부를 할 때 ‘마흔에 살고 싶은 마당 있는 집’ 책을 내신 이종민 리노하우스 대표님을 인터뷰한 적 있습니다. 부산에서 노후 주택을 중축해 원하는 집으로 만드는 과정을 담은 책이었습니다. 기사 제목은 <부자 아니지만 '마당 있는 집'을 꿈꾼다면 기사 링크 >이었습니다. 오마이뉴스에 업로드를 했었는데 조회수가 며칠 만에 만 뷰를 훌쩍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포털 메인에도 소개되었고요. 우리나라에 마당이 있는 집을 꿈꾸는 사람이 꽤 많구나라는 것을 느꼈던 경험이었습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제 또래 세대의 아파트 선호도는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의문이 듭니다. 우리는 정말 아파트가 좋아서 아파트에 사는 걸 까요. 저는 꽤 많은 사람이 한편에 마당 있는 집을 꿈 꾸며 산다고 믿습니다. 아파트 이상의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이지요. 아파트 가격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시점이 오면 그때도 모든 사람이 아파트에 살고 싶을까요. 비슷한 가격이라면 꿈이라 믿던 마당 있는 집을 찾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아파트를 선호하는 이유는 현시점에 가장 나은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종착점은 아닐 것입니다.
부산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지만 언젠가 시골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 말을 꺼내면 주위에서 낭만과 현실은 다른 거라고 조언을 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시골은 사람 살기 쉬운 곳이 아니라고요. 시골집에서 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은 어쩌다보니 프랑스에서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기쁘면서도 내 낭만을 위해 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집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로 맘 먹기 까지 꽤 오래 망설임의 시간을 가진 이유입니다. 두 번의 겨울을 보내고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곳에서의 삶이 만족스럽습니다
‘한국 사람은 내 집 마련에 너무 집착한다’ 이런 말을 종종 듣곤 했습니다. 외국에 살아 보니 그건 한국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면 다 자기 누울 자리에 집착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사는 집을 보면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을 짐작할 수 있다고 하지요. 이런 가치관도 있구나 하고 재미있게 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혹시 마당이 있는 집을 마음속 한구석에 품고 계신분이 계신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하나의 아이디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