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는 왜 유독 오래된 건물이 많을까
박완서 작가님이 유럽에 갔을 때 문화유산을 탐방하고 놀라셨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문화유산의 위대함만 알고 살았는데 유럽에 가보니 우리 것들이 너무 소박해 보이더라고요. 천년의 석굴암이 최고인 줄 알았는데 그쪽 세상이 너무 눈이 부시더라는 겁니다. 묻고 따지지 않고 우리나라의 ‘우수함’을 외치는 일그러진 애국심을 향한 박완서 작가님 다운 시니컬한 글이었습니다.
저도 처음 프랑스 여행을 했을 때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거리만 걸어도 온 사방에 수백 년 되었다는 건물이 있었으니까요. 프랑스에 온 지 오 년이 지나 이곳 사정을 알고 나니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석굴암은 세계적인 유산 맞습니다. 우리나라의 사찰, 서원도 대단한 유산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 것들은 서방의 그것에 비해 소박해 보일까요? 서방의 문화유산이 유독 화려한 이유를 알려면 ‘증축’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간 것은 2010년입니다. 북새통에 크기는 어찌나 큰지. 수많은 명화를 봤지만 피곤함에 눌려 그다지 기억이 없습니다. 흥미가 갔던 것은 루브르 박물관의 증축 과정을 담은 복원도였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은 원래 프랑스의 궁전이었습니다. 800년에 걸쳐 증축을 했기 때문에 초기 흔적은 벽 정도만 남아있습니다.
전형적인 중세 시대 궁전이었던 루브르는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고 근대로 들어서며 점점 규모를 늘려갔습니다. 우리가 아는 모습은 1800년대에 대략적인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서방의 웅장한 건물은 이 시기의 것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턴, 빅벤도 이 즈음 지어졌습니다. 클래식한 얼굴을 한 근대 건축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은 과거의 모습을 복원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래된 것은 예전의 모습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접근법인 것 같습니다. 석굴암은 천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유산이니 시대를 관통해 과거를 볼 수 있는 엄청난 장소이지요. 불국사 같은 사찰이나 각 지역의 서원에서도 ’복원‘과 ’보존‘을 위한 작업을 합니다. 정지된 과거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시각은 조금 다릅니다. 오래된 것을 시대에 맞추어 증축하여 활용합니다. 과거를 과거로만 두지 않고 ‘오늘의 과거’로 만드는 것이지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는 1989년에 세워졌습니다. 이런 가치관은 프랑스 전역에 뿌리 박혀 있어 곳곳에 증축 중인 옛 건물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래된 집을 개조해 살아가는 사람들도 일상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서 우리 집을 소개할 때 삼백 년 된 집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삼백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농가가 아니라 삼백 년 '동안' 증축된 농가이지요. 루브르 궁전에 비할 바는 아니나 우리 집도 복원도를 그려보겠습니다.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장소는 현재 저희가 거실로 쓰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 공간을 시작으로 양쪽으로 집이 늘어난 것입니다.
지어진 시기는 다르지만 기초 골조는 삼백 년 전 그것을 그대로 쓰고 있습니다. 모두 지역의 브리오네 Brionais 형식을 따랐습니다. 낮은 돌벽과 높고 가파른 지붕 형태는 습도가 높은 부르고뉴 남서부 만의 독특한 건축 방식입니다. 집 옆의 외양간도 같은 형태로 시대에 맞추어 증축되었습니다. 처음 지어진 외양간을 앞에 두고 지어진 순서 대로 공간이 늘어서있습니다.
저희가 이 집을 구매하고 처음 한 일은 집 벽을 뜯어 해묵은 먼지를 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집 뒤켠에 있는 축사를 가구를 보관할 창고로 만드는 일도 했습니다. 반년 정도 곳곳을 세척하고 바닥 작업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전 사람들이 남겨놓은 여러 증축의 흔적을 보았습니다. 삼백 년을 이어온 역사의 끝자락에 저희가 있는 거겠지요.
창고 공사가 끝난 날 시멘트를 바닥에 발라 첫째 딸의 발자국을 날짜와 함께 새겼습니다. 오십 년, 백 년이 지나 누군가가 이 집에 살게 되면 우리가 남긴 흔적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그 시대의 필요에 맞추어 증축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렇게 이 집은 계속해서 '오늘의 과거'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