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vere Dec 01. 2023

재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쿤데라)

'난해하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을 읽는 사람이 앎의 체계를 벗어나 있는 뜻이다' -'소설은 작가가 자신에게, 또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 낯선 시간 속으로, (이인성 작가 KBS 인터뷰) 중에서-


밀란쿤데라의 소설을 대하기 前 이인성 작가의 '낯선 시간 속으로' 작품을 언급하고 싶다. 두 작품은 서로 난해하다. 난해해서 이인성 작가는 '독자의 경우도 그런 것들의 선입관 없이 열린 자세로 그냥 따라가단서를 찾아보라'라고 한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낯선 시간 속으로 헤매고 따라가 보다가 무거움과 가벼움의 존재를 잡을 듯 말 듯 흐릿한 의식의 흐름으로 겹눈질하면 그 체계의 이면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작품 속 배반은 낯설다. 그렇지만 배반이란 무의식의 낯선 형상에서 잠시 안도할 수 있는 '제5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편에서 의식의 흐름을 체화한다.


의식하고 경계하는 6번 우연의 메타포와 잘 짜인 각본과 조정의 혼돈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잘 들어맞아 떨어지는 필연으로 귀결하는 흐름을 캐치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이 작품만은 읽는 독자인 내가 솔직하지 않게 느끼고 표현하고 함부로 단정 싶고 싶은 작품이다.  제7부로 나누어진 목차에서 앞에서 언급한 제5부를 가장 구체적이고 간결한 서술로 이어진다.


비로소 독자는 낯설지 않고 익숙해진다. 등장인물은 단순히 나뉘는데 무거운 인물(테레사, 프란츠)과 가벼운 인물(토마스, 사비나)인데 작품은 토마스 위주의 시점과 작가의 시점의 혼재되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토마스의 비중이 크다.


의식의 흐름대로 읽어가면 줄거리를 놓치고 정신 차려 논리적 흐름대로 가면 이 책의 전부를 놓친다.  따라서 줄거리에 연연하지 말고 메타포적 서정과 서사를 한꺼번에 쟁취하며 밀고 나아가야 되나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 작품은 솔직하게 쓸 수가 없다.


아니 솔직하게 쓸려면 쓸거리가 없다고 해야 진정한 표현일 듯하다. 과연 토마스는 가벼운 것일까? 그의 육체적 욕정과 욕망에 상반된 작품 속 역사는 무겁다.


'프라하의 봄'의 투쟁적 역사의 한중간에서 그의 항복을 은유한 서명을 거부하기 위해 외과의사에서 스스로 하강하여 창문닦이가 되어 또 다른 무거움을 가벼으로 대체한다. 스스로의 운명의 순종인가?


그의 아들과의 대면에서 또다시 갈등하는 무거움을 볼 때 토마스는 개인적으로 무거운 인물이고 스스로 솔직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라 해석하고 싶다.


그는 비록 자유롭지만 솔직성의 내재되어 있는 자유는 억압으로 귀결된다. 그 억압의 분출로 여성과의 사랑을 택했는지 택하여졌는지조차 혼란스럽지만 그는 무겁게 거부하고 스스로 추락하고 스스로 자위하는 인물로 규정된다.


토마스에 대비된 테레사는 무거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토마스의 진정한 억압에 동조하는지? 아님 이념에서 자유로운 진정한 자유를 갈망하는지는 명확하게 알 수 없다.


독자인 나로서는 테레사의 무거움은 가벼운 토마스보다 더 가볍게만 보인다. 그러나 토마스의 낯선 시선으로는 절대 향유할 수 없는 그녀의 독특한 무거움의 의식의 흐름 (배에서 꼬르륵한다는 점등)은 무거움으로 분류하기에 충분하나 필요조건이 충족되는지는 동조되지가 않는다.


독자인 나는 이 작품을 솔직하게 쓰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유는 난해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라는 작품 속 주문처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토마스와 테레사의 허망한 죽음 속 작품의 해설을 찾다 보면 밀란쿤데라는 결국 가벼움의  무게를 더 두는 것 같다는 일치된 서평이 지배적이다.


가벼운 것에 무게를 두면 무겁게 되는데 기존 무거운 것에 대비하여 더 무거운 것인지 더 가벼운 것인지 비교적 우위의 본능적 습성만 못쓸게 남아진다.


가령 '낯선 시간 속으로'가 긴장되고 어둡고 공포스러운 의식의 흐름 초반에 읽힌 시점이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생사의 화두에 부딪혀 궁금해하는 그 모든 실체가 보이는 빛이 투광하는 시점에 읽은 작품이라 분류하고 싶다.


사바나와 프란츠 관계 또한 얽힌 무거움과 가벼움이 있지만 토마스와 테레사의 관계의 실타래의 비중만큼은 아니다. 토마스는 가벼움 삶일까? 무거운 삶일까?


스스로 내려가고 스스로 용서하고 스스로 자기 방어적 삶의 무거움이 남에게는 가벼움 냉소로 비치는지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는 면에서 주체성의 상실 함마저 느껴진다.


그런 한없는 무거운 토마스의 비도덕적(이 소설에서 윤리규범으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재단하지는 않지만)의 가벼움으로 비치는 그의 머리냄새에 질려버리는 테레사의 질투 또한 여러 감정중에 하나이다.


토마스의 의식의 경계 속 테레사의 표정을 지적하는 원인이 바로 자신인 것을 깨달은 구절에서 그는 작가가 규정하지 말고 소설 속 토마스와 독자가 해석할 틈을 제공한다.


가볍고 사소한 사건은 결코 가볍지 않으며 무겁고 진중한 사건은 때론 단순하고 가볍다는 의미인지? 작품 속 대장정은 또 다른 분열의 과정일 뿐 과연 등장인물들은 재귀할 수 있는지? 


'인간을 카테고리별로 분류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다면 우리는 우선 틀림없이 인간을 이 생활활동, 혹은 저 생활활동에 종사하게끔 이끌어가는 그들의 실존적 욕구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


이해받지 못할 말들, 그 속에 거울로 반사되는 이해받지 못할 상황, 그리고 감흥 없었던 서해여행! 제6,7부 읽기를 남겨두고 갑자기 마음이 무거워지는 것은 존재의 무거움 아니 힘겨움인지 그저 글로써 내가 나에게 감정을 우선 전달하여 본다.


*재귀 : 본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옴. 

*회귀 : 본재의 자리로 돌아오거나 돌아감. (같은 뜻)


-2023년 드디어 겨울, 12월 1일에 쓰다.




작가의 이전글 자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