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
적성은 선호도에 따라 마음이 가는 것이다. 선호는 논리나 신념과는 달리 늘 변할 수 있으며 또한 자신한테 맞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안 맞을 수 있는 불일치를 선행적 경험을 통해 흡수할 수도 있고 폭넓은 통찰력을 배양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적성은 자신이 수긍하고 인정하는 수정행위이며 과거와의 비교가 배제된 유연한 진행형이다.
변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가 타인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는 자기 본질의 영역이기 때문에 마음 가는 대로 흘러가면 된다. 분명 어렴풋이 어느 정도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예상해서 공부도 해봤는데 전혀 매칭이 되지 않는 분야가 안전이다. 지겹고 불편한 반복으로 사람을 협소하게 만드는 분야로 여겨지며 무엇보다 분야자체로 봐도 흥미가 없다
반면 그렇게 지긋하게 싫어했고 기피했던 환경분야는 어느 날 문득 굴뚝의 연기방향 흐름을 보면서 그냥 눈으로 보고 생각만 하기엔 아깝다는 자각에서 이제 탐구해 봐야겠다는 조그마한 동기부여와 또 전공에 따른 사전지식이 있어 손을 대어봤는데 몰입이 잘된다. 현재까지는 그렇다. 또 바뀔 수는 있겠지만 부담은 없다.
환경안전은 두 단어가 동일하게 붙어 다니면서 동일한 조직을 두는 기업체가 많지만 환경과 안전은 전혀 공통성이 없는 각각 다른 독립적 개별의 분야이다. 난해하지만 파고들어 열정이 발휘되는 시점과 이미 발을 들여놓은 분야에서 멀어져 가는 시기가 교차하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나한테는 그 시기인 것 같다.
굳이 어느 분야에 국한을 둘 필요도 없으며 분야의 교차는 노선의 수정일뿐 변덕이 아니며 일관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여러 다방면의 도전과 그에 따른 실패 또는 성취의 결과를 경험하게 해 준다. 올곧지만 경직된 사고의 타파는 자신의 영역에서 먼저 시도해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고 무난하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노력이 필요하다. 간절히 바라는 대상에는 무(無)의 행위도 있을 수도 있고 무거운 유(有)의 행위도 있을 수도 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것은 오로지 무의 행위만을 폄하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며,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행위를 적성에 맞다고 선망해서도 안된다. 인생의 과정은 수정의 연속적 행위이다.
이 짧은 글을 쓰는데도 수십 번의 수정행위의 과정을 거치는데 인생이란 수직선에 인생의 수정펜과 지우개 없이 그렇게 반듯한 일직선을 긋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적성에 맞을 때 적응이 잘될 것이며 선은 쭉 전진하다가도 싫증 나고 적성이 맞지 않아 적응이 잘 안 되면 선은 꾸불꾸불하게 나가게 된다.
그럼 다시 수정해서 굴곡된 선의 기울기를 완만하게 만들어 수직선을 그으면 된다. 적성에 맞아 더불어 적응이 잘되면 편안해진다. 그 편안은 무의 행위의 편안이 아니라 적극적 유의 행위에 편안이다. 양쪽의 편안함을 다 느껴봐야 하기에 인생의 수정펜과 지우개는 계속 지녀야 할 인생문구용품 아닌가 싶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그 뜻은 바라기만 하지 말고 적성과 적응과 선호를 잘 수정하여 이루어지기 근접하게 하나하나 접근해 나간다는 점진적 편안함을 추구하라는 뜻으로 해석해 본다.
수정의 연속성을 유지하다 보면 결국 삐뚤지 않은 곡선의 유연함과 삐딱하지 않은 직선의 단호함, 이 양면을 겸비하게 될 듯하다.
하얀 지우개로 연필의 검정흑심을 말끔하게 지울 때 손에 묻어있는 연필자국의 검은색이 자연히 지우개에 옮겨 묻는다. 하얀 종이의 검정 글씨는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지는 대신 하얀 지우개는 손을 통해 옮겨와 검게 된다. 흑백은 그렇게 서로 교차하면서 여백의 종이에 아름다운 선이 그어지고 채워진다. 수정은 그렇게 교차하며 아름다움을 완성해 가는 행위인 것이다.
-2025년 3월 15일에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