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직빵이다
노골적이다는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내일은 선생님이 밥 사세요
사무실 직원이 작아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을 때였다남자 직원 몇은 식당에서 밥을 사 먹고 여직원들은 각자 도시락을 가져와서 먹었다. 정 반찬이 없을 때는 컵라면을 사 오거나 계란 프라이 하나만을 싸오더라도 여럿이 먹다 보니 서로 가져온 반찬으로 그럭저럭 맛있는 식사시간인 셈이었다. 단 한 직원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장거리를 출근한다는 이유로 매번 젓가락 하나만 갖고 자신의 끼니를 해결했다. 컵라면을 들고 앉았다가 다른 사람 김치볶음밥을 조금씩 얻어먹다가 나중에는 정작 도시락 싸온 사람이 컵라면을 먹는 현상이 벌어졌다. 젓가락질은 어찌나 날렵하고씹는 속도는 볼보 발통을 달았는지 야심 찼다. 그것까지는 그래도 눈감아 줄만 했지만 양심이 있으면 컵라면이라도 자기 돈으로 사놔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다른 사람이 사놓은 컵라면을 하나둘씩 뺏어다 먹었다. 내가 이런 처사는 그냥 못 넘어가는 성격인지라, 한 달째 정도가 되는 날 말을 했다.
"선생님, 집 못살아?"
"왜요?"
"아니, 매번 젓가락만 들고 앉으면 다른 사람들한테 밥이라도 한번 사야지. 그 정도로 힘든건 아니다 싶어서."
갑자기 분주하던 젓가락질이 서서히 멈춰지면서 쏴한 냉기가 돌았다. 옆에 앉은 콩순샘이 내 허벅지를 살짝 찔렀다.
"내일은 샘이 밥 사는 거다."
그녀가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볼에 너무 밥이 많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말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 내일은 외식... 뭐 먹으러 갈까?"
"샘이 정하세요!"
그녀가 말했다.
"아니지. 돈 내는 사람이 정해야지. 쓰싹쓰싹... 쓰는 것도 괜찮고." 그 덕에 다음날 우리는 제일 좋은 스테이크 집에서 배부르게 쓸었다. 모처럼의 외식에 분위기는 괜찮았다. 콩순 샘이 내 옆에 슬그머니 와서 말을 건넸다."모르는 거였네."
"모르면 가르쳐 줘야지. 그래야 서로 편하죠."
그녀가 나빴던 것이 아니라 자신의 빈대 짓이 다른 사람에게 민폐라는 사실을 몰랐다.
염치없는 사람이란?
그런 사람이 종종 있다. 자신이 한 행동하나 가 주위사람들에게 어떤 민폐를 끼치는지 모르는 사람.
민원이 있는데도 개인적인 전화를 큰소리로 받으며 다른 사람의 업무에 방해 주는 사람. 블랙리스트 민원이 와서 직원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난동에 가까운 진짜 난동을 부려도 자신은 컴퓨터에 눈을 박고는 아무것도 안 들리는 양 자신의 일신 보호에 급급한 사람, 자기는 밥 한 끼를 안 사면서 다른 사람보고 늘 밥 사달라고 빈대 붙는 사람, 우리 아파트는 1억이 올랐어, 이건 우리 아이들이 사준 50만 원짜리 티셔츠야, 그렇게 돈지랄은 하면서 씹은 커피 한잔을 안 사는 사람,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투명인간인척 민원 오면 눈 내리깔고 자세 낮추는 사람, 정수기 물통에 물이 떨어지면 옆방으로 가서 제 컵에만 물 떠 오는 사람, 연봉 8천만 원짜리 직원이 비정규직 직원 차 얻어 타고 다니면서 밥값 하나도 안 내는 사람... 등등.
나는 그런 사람 앞에서 노골적으로 이야기한다.
"선생님, 여기 민원인 상담해주세요.'
"선생님, 이 번 밥값은 선생님이 내시죠."
"선생님, 돈 자랑하셨으니까 돈도 좀 쓰세요."
그래서 입이 걸다고(경상도 방언인가?) 노골적이라고 소리를 듣긴 하지만 어쩌랴, 그 피해자들이 대부분 젊은 친구나 힘없는 을의 자리라, 나라도 말을 해야지 싶어 오지랖 넓게 참견한다.
이게 꼰대 근성인가? 내가 심했나? 은근슬쩍 젊은 친구에게 물으니, 엄지 척을 들어 보인다. 내 옆에 와서 살짝 귀에 소곤거린다.
"잘하셨어요, 샘 아니면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할 사람 없어요."
"그렇지? 아부 아니지?"
"네에, 속이 시원해요."
다행이다. 내 입담이 시원하다니. 꼰대의 전조현상이 아닌가 마음 졸였는데. 가끔은 나의 노골적인 힘을 빌리기 위해 청탁이 들어오기도 했다. 경상도 말로 하면 성격이 개 뼈 다꾸처럼 지랄 맞은 성격인지라, 순딩이 처럼 앉아 있다가 이런 발칙한 일이 발생하면 나도 모르게 노골적인 아줌마로 변신해버리니, 나도 나를 제어하기가 힘들다.
"미안해요, 제가 좀 노골적이라."
이렇게 사과를 덧붙인다, 요즘에는
그녀는 다른 곳으로 가기 전까지 젓가락 하나로 버텼다. 그 뒤로도 내가 몇 번 더 밥을 사라고 주문했고 그때마다 그녀도 흔쾌히 밥을 샀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밥과 반찬까지를 배려해 모두가 조금씩 더 도시락의 양을 늘렸다. 그녀의 좋은 식성을 모두들 너그럽게 수용했다. 어쩌다 한번 있을 칼질을 위해 KEEP 하는 자세로, 공평한 도시락의 나눔이었다.
# 나는 밥값만큼은 경제적 평등의 원칙을 잘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수입이 많은 사람, 소득이 높은 사람이 밥값을 많이 내야 한다. 비슷한 사림끼리 가면 N빵을 해야 하고, 돈을 벌지 않는 사람과의 식사에서는 돈 버는 사람이 무조건 사야 한다. 이런 원칙만 잘 지키면 최소한 윗사람이 욕먹을 일은 없다.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으면 염치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노골적인지를 모른다. 모르면 고칠 수가 없다. 또한 몰랐기 때문에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이다. 아....아닌가? 알아도 그런 걸까? 그럼 더 도그샤끼고.
직장에서도 8할이 인간관계다. 내가 염치없는 짓을 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다른 사람에게 간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몇 년을 그러면 그건 더 노골적인 거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 입이 노골적인 게 낫다. 그렇게 하고도 뒤끝은 없다. 사람의 감정에 대한 잔챙이를 맘에 담아 두지 않는 스타일이라, 노골적으로 말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수용 여부는 상대방이 판단할 영역이고.
염치없는 사람에게 노골적으로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시라. 돌려까지 않고 그렇게 말했을 때 오히려 상대방이 더 솔직하게 반응하더라. 그럼 됐다. 나에게도 그렇게 노골적으로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밥 산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