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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뜬구름 May 12. 2019

캐나다의 이웃들 <47>

공황장애극복에 등장하는 의료진

몇 년 전 육체적으로 좀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걸 질병이라 하기엔  애매했고 그렇다고 증세가 나타나면 죽을 것 같은 걸 보면 분명 질병의 카테고리에 드는 것 같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로 공황장애가 아니었나 싶다.  가장 뚜렷한 증세는 심장이 무지하게 빨리 뛰고 숨쉬기가 힘든 것이었다. 둘 중 더  힘든 게 숨 쉬는 문제. 지금은 맘껏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지만 그때만 해도 공기가 가슴에 들어가는 건지 아닌지 답답하기만 하고 곧 쓰러질 것 같은 공포에 휩싸이기 일쑤였다. 항상 이런 건 아니고 하루 중 불특정 시간대에 나타났다. 주로 낯 시간대였다. 그러면 조용히 그 자리에서 눈을 감고 누웠다. 그리고 어린 시절 좋은 추억들을 떠올리면서 현재를 지우려고 애썼다. 그렇게 30분쯤 누워있으면  증세가 사라졌다. 그래서 더더욱 병이라고 생각을 못했다. 뭐 일이 힘들어서 그렇겠지. 좀 일이 손에 익으면 나아지겠지.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증세는 더 빈발해지고 공포는 더 심해졌다. 참을 수 있는 한계를 지나고서야 병원 문을 두드렸다.


우선 전 패밀리 닥터를 가게에서 만났다. 우리 가게에 세탁물 맡기러 온 김에 지나가는 말로  "두통은 좀 어떻냐"라고 물었다. 그는 내가 두통으로 자기 병원을 방문한 걸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 두통은 다 나았고 다른 증세가 가끔 나타난다"하자 별거 아닌 것처럼 두통이 아래로 내려올 수도 있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면 나을 거야라고 말했다. 경험이 많은 의사라서 신뢰는 갔지만 그 증세는 그칠 줄 몰랐다. 할 수 없이 현재의 패밀리 닥터를 정식으로 예약한 뒤 만났다. 중국인 산부인과 전문의자만 캐나다서 가정의를 전공해서 웬만한 건 다 알고 애매한 건 해당 전문의에게 이관시켜준다. 이날도 내 증세에 대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자기 분야를 벗어난 것은 분명한데 전문의한테 보내야 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판단을 내려버렸다. 둘 다 소득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인 의사를 찾았다. 한인의사는 정말 만나기 어렵다. 교민 수에 비해 의사가 너무 적어서 개원한 지 며칠만 지나면 환자수가 꽉 차서 더 이상 받아주질 않기 때문이다. 변방에 사는 내 귀에 들어올 때쯤이면 이미 만석이 돼버린다. 이의사는 용케 동부에서 온 지 얼마 안 되는 젊은 인데 전화예약이 가능했다.


앵무새처럼, 그러나 우리말로 좀 상세히 증세를 말했다. 그는 말없이 우선 청진기로 가슴을 체크했다. 약간 놀라는 표정과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곤 진찰 페이퍼에 뭘 적었다. 대부분의 의사가 적는 글은 알 수 없는 용어가 대부분인데 이의사의 기록은 앞에 앉은 환자가 대충 알 수 있게 적었다. 좀 호들갑이 들어있는 느낌이랄까. 그는 아주 단호하게 지금 즉시 종합병원에 가서 체크한 뒤 심장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시라도 지체하면 심장이 바로 멈출 수 있는 중한 상태다고 덧붙였다.   엠블런스를 불러줄 테니 타고 가라고 다그쳤다. 그건 거절했다. 타고 온 차도 돌려놓아야 하고 가게 가서 이것저것 손본 뒤 병원에 가야 될 것 같았다.


동네 유일한 종합병원 응급실에 갔다. 그렇게 멀리하고 싶었는데 희한하게 멀리하면 할수록 더 가까워지는 게 응급실인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한인의사가 몇 마디 던져준 대로 간호사에게 말하자 좀 빨리 입실이 됐고 그때부터 검사가 시작됐다. 기본 베이스가 혈압 피 소변 초음파를 여러 시간에 걸쳐서 한 뒤 운동부하 테스트라면서 뭘 몸에 차고 트레드밀에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했다. 이걸로 하루 꼬박 보내고 퇴원쯤 해서 몸에 뭘 채워줬다. 24시간 심장 체크하는 건데  특이사항이 있으면 기록할 수 있도록 용지를 받았다. 이걸 다음날 제출하자 병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한 뒤 나의 패밀리 닥터에게 통보가 가고 이상이 있으면 내게 연락이 하는 시스템인데 그건에 대해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무 이상이 없다는 신호. 한편으로 안심이 되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증세가 사라진 게 아닌데 아무 이상이 없다니.


병원에서 이상이 없다고 그러니 좀 나은 것 같기도 했다.  증세가 도지긴 해도 좀 인터벌이 길고 깊은숨을 쉬면 견딜만했다. 그러나 이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패밀리 닥터를 찾았다. 2번째 같은 증세로 호소하니 그 의사도 두말하지 않고 심장전문의에게 트랜스퍼해줬다. 그전문의는 중국인 남자였다. 이젠 그가 주치의가 돼서 이것저것 절차를 시작했다. 전번 하고 비슷하긴 했는데 이번엔 ct촬영이 포함돼있었다.  몇 개월에 걸쳐서 다 검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그의 개인 사무실을 찾았다.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10평도 채 되지 않을 것 같은 작은 공간에 검사실 하나 의사 집무실 겸 진료실과 리셉선코너가 전부였고 어떤 서양 할머니가 내가 방에 들어온 건 안중에도 없고 열심히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도 검사 결과를 유심히 보면서 마지막으로 검사실에 있는 아주 오래돼 보이는 기구를 가슴에 갖다 대는 검사를 했다. 그리곤 나를 앞에 앉히고 자초지종을 설명을 했다. 그걸 녹음기에 다 기록하고 기록된 녹음테이프는 타자원에게 주고 그녀는 말을 글로 만들었다. 그의 결론은 "심장은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증세는 정신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절 차는 패밀리 닥터의 손에 의해 진행되는데 그녀도 감감무소식. 정신과 의사를 수배해서 보내줘야 하는데 그걸 무시해버렸다. 이젠 양의를 통한 치료는 여기서 끝난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한의사를 찾았다. 워낙 많은 한의사가 있어서 골라내기도 쉽지 않았다. 한국에서 한의대를 나온 사람과 여기서 그 과정을 거친 사람들로 두부류인데 아무래도 대학에서 전공한 한의사를 찾았다. 이웃들의 경험을 존중해서 s한의원에 갔다. 소문대로 대기자가 꽉 차 있었다. 예약제에서 대기자가 두 명 이상 있다는 건 좀 이상한 일인데 일부는 어제 처방한 약을 찾으러 온 게 아닐까 보였다. 그 한의사는 모형인체의 가슴을 열고 진맥 한 결과를 설명했다. 심장에 이상이 있는 건 그아래 신장기능이 떨어져서 그렇다고 말했다. 희한한 게 그의 인체모형에는 심장과 신장은 연결돼 있었다.  그리곤 신장을 보하는 약을 반제 처방받아먹으면 낳는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약간 믿음은 덜 갔지만 대안이 없어서 보름쯤 한약을 먹었다. 그리고 증세가 사라졌다. 정확히 그 약을 다 먹고 사라진건 아니고 먹는 과정에 없어진 것이다.


그 한약을 먹어서 증세가 사라진 건지 아니면 증세를 유발하는 외부환경의 변화가 약이 된 건지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누군가 한의원을 물어보면 항상 추천일 번으로 그를 꼽는다.


오랜 시간 날 괴롭혔던 그 증세는 여러 의사를 거치면서 검사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헛다리 짚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아니면 캐나다에는 공황장애 환자가 많지 않아서 소홀히 한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지금도  확실히 공황장애라고 말은 못 하지만 여러 정황을 종합해보면 그것에 가깝고 그 시절 가게 운영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던걸 감안하면 맞을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몸과 마음이 좋다.


이미지/ 공황장애에 시달리는 모습. 동아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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