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 스크램블
-다시 시작하는 사랑 이야기 01
이런 일은 평생 처음이다. 한 달 사이에 다시 5킬로그램이 빠졌다.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무거워만 가는데. ‘마음이 마음대로 된다면 아무것도 아니다.’ 다시 한번 더 문장을 새겨 본다. 눈을 뜨자마자. 아마 자면서도 내내 그 말을 되뇌었을 것이다. 그 마그마는 어디에서 샘솟는 것일까. 평생 저장해 두었던 것을 파내는 모양이다. 살을 에는 긴 고통과 짧은 쾌락의 에너지.
아침이면 창문을 연다. 공기를 바꾸고 싶어서다. 그때도 들이치는 것은 그 사람 옷자락이다. 심호흡을 한다. 침대 위 이불이 펄럭이면서 냄새를 퍼뜨린다. 참 오래전 일인데도. 어디에나 그 사람이 있다. 언제나 느낄 수 있다. 곁을 지키는 그 사람을.
오늘치 약을 먹고 큰 겁으로 물을 들이켠다. 오래된 습관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찬 물 한 잔. 삼십 분쯤 지나면 배가 고프다. 해가 지면 웬만해선 뭘 먹지 않으니 먹은 지 오래다. 달밤에 체조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간단하게 아침을 준비한다. 시금치를 씻어 살짝 데치고 꼭 짜서 냉동실에 잠깐 넣었다. 그러면 훨씬 더 맛있다. 차가운 시금치를 꺼내 적당한 크기로 잘라 볼에 담는다. 다진 마늘을 조금 넣고, 맛난 간장을 약간 치고, 갈아둔 깨소금을 듬뿍 뿌리고, 참기름을 둘러서 조물조물 무쳤다. 달걀 두 개를 풀어서 스크램블을 만들고. 조금 덜 익혀서 시금치나물과 섞는 게 맛있다. 취향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그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스크램블을 조금 덜 익히면 싫어요? 비린내가 아주 조금 날지도 몰라요. 그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싫어요. 그렇지만 시금치나물과 섞으면 괜찮을 것 같아요.”
“알았어요, 비린내는 잡을게요.”
너트맥 분말을 아주 조금 뿌리면 달걀 비린내는 신기하게도 완전히 사라진다. 많이 뿌리면 너트맥 분말 냄새가 강해서 싫을 수도 있다. 조심해야 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늘 정도가 문제다. 물론 달걀이 아주 신선하면 그럴 것도 없지만. 아니구나 예민한 사람은 그래도 맡아낸다. ^^
밥 한 숟가락 퍼고 다 덮일 정도로 시금치 스크램블을 부어서 식탁에 앉았다. 거기에는 그 사람이 없다. 어디에나 있다가 밥 먹을 때면 사라진다. 전에는 두 그릇을 차려냈다. 불러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그만두었다. 어디에나 있다면 어디에도 없다. 사랑은. 어디엔가 그곳에만 있다.
먹고 치우고 창문을 다 닫았다. 부엌의 환풍기도 껐고. 귀가 먹먹할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래도 두려울 것은 없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 다시 시끄러워질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