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은 영이시니 -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침례교,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그리고 내 가까운 친구 몇몇은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 단순하고도 분명한 고백이
어느 순간부터
내 안에서 의문 하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분명 같은 분인데,
왜 이렇게 나뉘어 있어야 하는 걸까요?
내가 처음 하나님을 만난 건
정확히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기억 속의 동네 모습으로 보아
예닐곱 살 무렵,
아주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와 가까웠던 동네 아주머니
손을 잡고 처음 발을 들인 교회는
침례교회였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하나님을 만났고,
그 이후로 종교란 칸에
'기독교'라고 쓰는 일은
늘 확신에 찬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교 집안의 셋째 딸인 저는
몰래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믿음을 지켜야 했습니다.
아버지의 아명 '미륵'이 그것을 말하듯
부모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셨습니다.
성인이 된 후에
나는 자연스레 침례교회를 찾았고,
교리에 따라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침례교인'입니다.
예배는 늘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삶 속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집 가까운 교회를 찾았고,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을 따라
옮긴 교회는 자연스럽게
동네에 있는 장로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코로나라는 긴 공백 끝에
내가 다시 만난 주님은
'감리교회' 안에 계셨습니다.
단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되지 않았던 이 경험.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여기에 질문 하나가 찾아왔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장로교인지 감리교인지를
분별해서 들어야 하나?”
“장로교와 감리교는 뭐가 다르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그의 대답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따뜻했습니다.
“교리적인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를 이해하고 듣는다면
어떤 교단의 목사님 말씀에도
은혜는 있어.
엄마가
이런 고민을 하는 걸 보니 참 좋네.”
그리고 나는 요한복음 4장에서
오래도록 찾고 있던 답을 찾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한복음 4:20)
예배는 어디에서 드려야 하는 걸까요?
그리심산일까요, 예루살렘일까요.
사마리아 여인의 질문은
단순히 장소를 묻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어디에서 만나야 하나요?"
"하나님이
나 같은 사람의 예배도 받아주실까요?"
예수님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4)
예배는 장소에 있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의 웅장함도,
제사의 정성도,
형식의 무게도
예배의 본질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배는
부서진 심령으로, 가식 없는 진실로,
주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 서 있는 이 자리가 바로,
주님께 드리는 예배의 자리였습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침례교인도,
장로교인도,
감리교인도 아닙니다.
나는 그저,
하나님의 딸, 그리스도인일 뿐입니다.
난, 그리스도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