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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뚱바오 Mar 17. 2024

원치 않았던 퇴사, 혼자 가는 여행

나를 찾아서

7년 전 그러니까 이전 회사 입사 전 직장에서 8년 정도 다녔을 때 권고사직을 하였다.

당시 셋째가 태어나고 돌이 되기 전이었고 다니던 회사의 경영악화로 해외로 이전을 하게 된 상황에서 나는 이직 준비를 하게 되었다. 많이 막막했고 가족생각에 걱정과 불안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위로금 명목으로 3개월 정도 월급을 주면서 퇴사를 하게 된 상황 이었다. 어떻게든 남아보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반 강제로 퇴사를 당해본 사람은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나만 바라보고 있는 자식과 아내 그리고 내가 큰 도움은 되지 못 하지만 자식이라고 걱정하시는 부모님. 현실과 타협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막막한 일상의 일과는 아침 일찍 도서관으로 간다. 이력서를 쓰고 지인에게 연락을 해서 재 취업을 문의를 한다. 집에 오면 7살 첫째, 4살 둘째, 2살 셋째는 일찍 퇴근하는 아빠가 낯설지 않게 바라봐 주는 아직은 어린 나이들이다. 아내 역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저녁상을 차리고 있지만 그 속은 속이 아니 었을 것이다. 나와 얼굴을 마주하거나 대화를 하더라도 결국 직장문제로 귀결되고 말았다.


한숨만 늘어가는 생활을 하던 내게 아내는 여행을 다녀오라고 하였다.

"여행?. 지금 이 상황에서 무슨 여행?."

"지금까지 오빠가 회사 생활하면서 이런 시간이 이었어? 앞으로도 그렇고.."

"그래도 혹시 연락이 올지도 모르고 이력서도 넣어보고 해야 되는데 좀 그런데.."

사실 이력서나 연락보다는 이 상황에서 나 혼자 편하게 여행을 가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다녀와. 애들은 내가 보고 있으면 되고 혼자 다녀와. 이왕이면 멀리"

갑자기 여행을 생각하니 어리둥절했다. 어디를 갈지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혼자 여행을 해본 경험이 없었으니 아는 곳도 없었다.

아내는 내게 설악산 다녀오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였고 등산화만 있으면 못 갈건 없어서 알겠다고 하였다.


설악산 대청봉을 두 번 정도 다녀온 아내의 도움으로 산장예약, 등산장비, 먹을 것, 교통편을 준비하였다.

준비를 하면서 뭔가 설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 상황에서 갑자기 설례는 느낌은 뭐지?. 친구들과 가족들과 떠나기 전 여행 준비를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마음속으로 출발부터 버스 타고 등산을 하고 산장에 가서 하룻밤 자고 새벽 정상에 가는 상상 속에 하나하나 준비를 하니 그런가 보다.


출발 일정이 다가왔고 계획대로 여행 루트를 머릿속에 새기며 출발하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가면서 지금 상황을 좀 정리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세워서 돌아 올 생각이었다.

누가 계획은 지키지 말라고 있다고 했던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나 등반을 하면서나 무념무상이었다.

버스 안에서는 창밖을 보면서 멍해지고, 등반을 할 때는 숨이 턱밑으로 내려가지 않아 허덕이느라 그랬다.

내려올 때는 터벅터벅 발 바닥에서부터 느껴지는 울림과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에 신경 쓰느라 그랬다. 경치?. 10월 말쯤이었으니 단풍이 떨어지는 시기여서 풍경은 좋았지만 도대체 머리가 하늘 보는 시간보다 땅을 쳐다보는 시간이 더 많았다.


평소 등산이라면 동네 주위 동산 정도 높이를 다녔던 내게 대청봉은 무리였다. 내려와서는 거의 반 불구 상태로 다리 한쪽 다리를 끌다시피 하면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운동이나 등산으로 체력을 올렸으면 낳았을 려나. 권고사직 스트레스와 아이 돌보는 아내 대신 퇴근 후 설거지, 쓰레기, 청소 등 집안일을 하면서 체력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


당초 여행을 하면서 현 상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구상을 하려던 계획은 1도 하지 못했다.

그런 반면 어지러웠던 머릿속은 정리가 되면서 맑아진 것 같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그 느낌은 자존감이었다. 자존감이 많이 높아졌었다. 자신감이 생기고 얼굴은 한결 부드러워졌다.

3개월의 위로금으로 생활은 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생활이 문제이니 실업급여 신청을 하고 이력서 내용도 싹 바꾸었다. 두 번 세 번 내가 할 수 있는 업무와 할 수 없는 업무를 구분하고 가능성 있는 업무를 어필하여 최대한 과장되지 않게 썼다.


여행을 다녀온 지 2주 정도 되었을 때 어느 한 중견 기업에서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고 이직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지원한 기업은 아니었고 기업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경우라 더 가능성이 높았다. 단 이력서 전체를 재 작성 한 것이 효과가 이었지 않았나 싶다.



예전 힘들고 어려웠던 경험이었지만, 난 피해자고, 억울하고, 이 상황이 힘들다고 매일 보냈다면 이력서 한 장 다시 쓸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아내의 뜬금없는 여행 제안과 혼자 하는 여행을 통해 자존감이 높아지고 어지러웠던 머릿속의 내 생각들이 정리가 된 경험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자존감의 긍정적인 변화는 자신의 행동과 말 그리고 정신으로 표현되고 정리가 된다.

그럼으로써 사회에서나 가정에서 자신감이 높아지고 정직한 자신의 삶의 질이 한 단계 높아지게 된다.

자신의 정직한 노력은 자기 신뢰를 높이게 되며 타인의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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