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장과 성찰
조용한 추석 아침이다. 느즈막히 일어나 몽이의 약과 밥을 챙겨주고, 양치만 한 채 책상 앞에 부스스 앉았다. 읽던 책을 조금 읽다가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써 볼까?’ 하고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해 본다.
음식 냄새가 진동하고 사람들 소리가 가득해야 할 명절인데, 우리 집은 이상하리만큼 고요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3인 딸은 수능을 한 달 앞두고 있다. 수능 최저를 맞춰야 하기에 연휴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아이를 챙기기 위해 나도 집에 남았다. 게다가 몽이는 약을 하루 네 번 챙겨줘야 하고, 언제 실신할지 몰라 늘 곁을 지켜야 한다.
결국 이번 추석은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평화로운 연휴가 되어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이 어딘가 불편하다. 시가에 가지 못해서? 며느리로서 눈치가 보여서? 그런 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 부모의 집보다 시가가 더 편한 사람이다.
시가는 제사도, 차례도 지내지 않는다. 내가 할 일은 손주 얘기 조금 하고, 설거지 몇 번 돕고, 배불리 밥 먹고, 느긋하게 낮잠 자는 정도다. 음식도 어찌나 맛있게 하시는지, 매번 살을 찌우고 돌아오는 게 단점일 정도다.
반면, 내 부모의 집은 전형적인 ‘시가 분위기’를 닮았다. 제사도, 차례도, 형식도 그대로 남아 있다. 엄마는 아빠 눈치를 보고, 나는 엄마 눈치를 본다.
그런 집안 분위기 속에서 나는 평소의 내가 사라진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수가 많아진다. 억지로 활발하게 굴며 침묵을 메운다. 하지만 그건 진짜 내가 아니다.
가식적으로 웃고, 가식적인 말을 한다.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아첨 같은 말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럴 때마다 마음 한켠이 불편해진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런 사람이 되는 걸까.”
친정이 가장 불편한 공간이라는 걸, 그때마다 뼈저리게 느낀다.
그래서 나는 명절이나 기념이 점점 부담스럽다. ‘기쁜 날’이라기보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날’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상처받았던 기억들도 이상하게 그런 날에 겹쳐온다.
선물 포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던져졌던 기억, 비교 섞인 말 한마디에 밤새 잠을 설쳤던 일들. 그런 조각들이 아직도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
이제는 다짐한다.
내 딸에게는 이런 부담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생일이라서, 명절이라서, 어버이날이라서 꼭 챙겨야 하는 의무 같은 건 만들지 않을 거다.
마음이 동하는 날, 그날이 생일이고 명절이면 된다.
365일 중 언제든 서로를 떠올리고, 만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