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입만"이라더니, 반을 왜 먹죠?

by 지나

“한입만 먹을게.”

사람은 이 말에 속는다.
짧고 귀엽고, 부탁하는 쪽은 별 뜻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을 듣는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각오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대부분 진짜 한입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처음 들은 건 남편에게서였다.
언젠가 같이 라면을 먹다가 그가 말했다.


“진짜 신기한 게 뭔지 알아?
내 동생은 항상 안 먹는다고 해놓고, 내가 라면 끓이면 꼭 ‘한입만’ 하고 와서 반을 먹었어.”


처음엔 웃기게 들렸다.
그냥 자주 있는 오빠-동생 사이의 유쾌한 에피소드겠거니 했다.

근데 들으면 들을수록,
그 ‘한입만’이 생각보다 강력한 공격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늦은 밤, 공부하다 출출하면 부엌에 가서 조용히 라면을 끓였다고 한다.
라면 하나, 물 550ml, 면발 탱글하게 타이밍 맞춰서 계란 톡—
그야말로 혼자만의 행복한 밤참 시간.

그런데 항상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끓기 시작하면 꼭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그 인기척의 주인공은 말없이 부엌으로 다가오더니
이 한마디를 했다.

“오~ 라면이네? 나 한입만~”


그건 바로 남편의 동생이었다.

말은 ‘한입만’인데,
젓가락은 이미 그릇 안으로 들어가 있었다.
면을 휘휘 저어 가장 잘 익은 부분을 골라내고,
국물도 후루룩— 마신다.
그리고 꼭 이렇게 말한다.

“근데 왜 이렇게 맛있냐? 라면 잘 끓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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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이 나오면 끝난 거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안다고 했다.
그 라면은 이제 더 이상 자신의 몫이 아니라는 걸.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아예 내가 끓여주겠다고 했지.”
“그래서 진짜 두 개 끓였어?”
“아니, 그게 문제야. 동생이 안 먹는다잖아.
진짜 괜찮대. 난 안 먹는다고, 진짜 배 안 고프다고,
살 빼야 한대.”

그 말을 믿고 남편은 결국 하나만 끓였다.
근데 라면이 다 완성되자마자,
동생이 방문을 열고 나온다.
슬리퍼 끌며 부엌으로 걸어와
익숙한 대사 한 줄.

“오~ 라면이네? 나 한입만~”


거기서부터는 예상 가능하다.
‘한입만’이 두 입이 되고,
두 입은 곧 ‘그릇 살짝 가져가서 편하게 먹는’으로 바뀌고,
남편의 라면은 50% 이상 소실됐다.

라면을 다 먹고 나서
동생은 이렇게 말했단다.

“진짜 라면 잘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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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은 고맙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남편은 깊은 허무를 느꼈다고 했다.
그건 그저 ‘나 잘 먹었어’의 다른 표현일 뿐이었으니까.

나는 듣는 내내 웃었다.
너무 웃긴데, 너무 익숙했다.
친형제 자매 사이에서 한입, 한 젓가락, 한 모금은 자주 있는 전쟁이다.

근데 신기한 건,
매번 같은 패턴인데도 늘 속는다는 거.
다시는 안 속겠다고 다짐해도,
‘진짜 괜찮아’ 한 마디에 또 하나만 끓이게 된다.

왜냐하면 그 순간만큼은 정말 안 먹을 것처럼 보이니까.


나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한입만’이 존재한다.

한입만으로 국물까지 다 마시는 사람

한입만 하면서 가장 맛있는 부분만 골라먹는 사람

한입만 먹고, 뒷입도 계속 가져가는 사람


그들은 늘 존재하고, 늘 갑작스럽게 나타난다.
라면 김이 올라오는 순간, 어딘가에서 인기척이 들린다면 조심하자.
그건 ‘한입만 사냥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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