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안 마시지만, 너희는 좀 적당히 해"

술자리 매너

by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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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 두 잔.

잔을 기울이다 보면 말도 기울고,

서로의 마음도 조금씩 느슨해진다.

어느 순간엔 다들 웃고 있고,

누군가는 엉뚱한 얘기를 하고,

어쩌다 눈물 한 방울 맺히는 밤도 있다.

그게 바로 술자리의 ‘맛’ 아닐까.

술은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조금 더 가까이 데려다 준다.


나는 사실,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체질상 빨리 취하고, 오래 앓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나는 오늘 안 마셔~”하고 조용히 앉아 있게 됐다.

문제는 그때부터다.

"술은 안 마시지만, 존재감은 120%"인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언젠가 친구 모임에서였다.

다들 오랜만에 만나 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나는 맥주 한 모금 정도만 천천히 입에 댄 채,

안주를 조심스럽게 덜어가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때 A가 등장했다.

"나 술은 안 마셔~ 그냥 분위기만!"

하면서 시원한 이온음료를 들고 앉았다.

좋다. 그럴 수 있다.

나도 그러니까.

근데 문제는, A의 입이 더 취해 있었다.


“야야, 쟤 또 우네? 너 진짜 술만 마시면 눈물 고이더라~”
“아 진짜, 또 전남친 얘기 나올 것 같아. 지금 분위기 감지했음.”
“야야, 너는 왜 혼자 이렇게 멀쩡하냐? 안 취했어?”
“그만 마셔~ 너 민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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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들이 웃기려고 던진 농담인 건 알지만,

듣고 있는 사람은 점점 입이 무거워진다.

방금까지 그렁그렁하던 감정도 쑥 들어간다.

분위기는 웃긴 듯 어색하게, 흐르던 감성은 조용히 멈춘다.

그 말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본인은 술을 마시지 않았기 때문에 가장 ‘멀쩡하고 정확하다’고 생각한다는 것.


근데 정말 그럴까?

내가 기억하는 진짜 싫었던 순간은

술을 마시지도 않으면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분위기를

평가하고 조정하려 드는 사람이 (눈치 없이 혹은 일부러) 무언가를 말하던 때였다.


“쟤 또 찡얼대기 시작했다.”
“쟤네 오늘 싸울 것 같지 않아?”
“얘 지금 취한 척하는 거 같은데?”
“와 진짜 너무 웃겨. 나 술 안 마셔서 다 기억나~”


심지어 술자리 다음 날, 친구들에게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기억시켜주는 수고까지 한다.

이런 말과 행동은 분위기를 망치는 걸 넘어서서,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감정을 차갑게 만든다.

감정을 풀어놓을 용기마저 비웃음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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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마시지 못하는 입장에서 늘 조심한다.

안주만 먹는 사람 되지 않으려

음식 덜 때마다 젓가락 조심하고,

분위기 끊기지 않게 적당히 웃고, 맞장구 치고,

술 못 마시는 사람 특유의 눈치 백 단 모드로 앉아 있는다.

(그래서 굉장한 피로감이 쌓이기도 한다.)

사실은,

그 감정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는 외로움도 있다.

웃고 있지만 마음이 어딘가 멀리 서 있는 기분.

그래서 그런 자리엔 자주 가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더더욱,

술도 안 마시면서 훈수만 두는 사람을 보면 너무 얄밉다.

마시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조용히 함께 있어주면 된다.

눈으로, 말투로, 표정으로

그저 ‘같이 있다’는 감정을 나눠주면 된다.

술을 마시는 사람이 감정을 풀어낼 수 있도록,

옆에 앉아 있는 사람이 조용히 웃어줄 수 있도록.

그게 어쩌면,

술자리에서 가장 예쁜 배려 아닐까.


나는 지금도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그렇다고 분위기를 방해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내 자리는 감정들이 편안하게 흘러갈 수 있도록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자리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자리에

술 안 마시면서 “이제 그만 마셔라~” “쟤 또 울겠네~”

훈수 두는 사람은

없었으면 한다.

울면 어떻고, 말이 많아지면 어떤가?

과하지만 않으면 술자리는 그러면서 회포도 스트레스도 푸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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