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이 조용하다.
기계음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눈을 감고 있고,
어떤 사람은 이어폰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고,
어떤 사람은 책장을 넘기고 있다.
그 고요 속에 갑자기 한 목소리가 터진다.
“어~~ 나야! 어어!! 어쩌고저쩌고 그거 있잖아~~!!”
지금 이 지하철은 누군가의 스피커폰 생중계 방송국이 되었다.
대부분 그런 통화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서 자주 보인다.
한 손에는 가방, 다른 손엔 핸드폰.
그리고 통화 버튼은 스피커 ON.
목소리는 ON을 넘어 빵빵 ON.
그분들은 통화를 하고 계신데,
문제는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는 거다.
왜냐고?
지금 통화 내용을 모두가 다 같이 듣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궁금했다.
왜 귀에 대고 통화를 하지 않으실까?
혹시 소리가 작아서? 귀가 잘 안 들려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귀에 대면 훨씬 더 잘 들릴 텐데?
핸드폰이 왜 생겼는지 그 본질을 잊으신 걸까?
아니면…
' 통화 내용 정도는 이 세상에 공유해도 괜찮다'는 마인드신 걸까?
그런 상황을 마주하면
나는 자동으로 주변 사람들을 한번 훑어본다.
그 순간 모두가 동시에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고,
괜히 핸드폰을 다시 보는 척하고 있다.
그건 공포가 아니라 민망함 때문이다.
남의 가족사, 병원 예약 내용, 시댁 욕, 아들딸 성적 이야기까지
전파되는 그 대화들을 듣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분의 삶에 지나치게 가까워진 기분이 든다.
알고 싶지 않다고요...
한 번은 버스에서 아주 또렷하게 들은 적이 있다.
“아니~ 그 며느리가 왜 그렇게 말을 해? 지 아빠 닮아서 그래~”
라는 말이 한 음정 높게 터져 나왔다.
그 며느리는 모른다.
그 시어머니의 한마디가 지금
버스 전원에게 공유되었다는 사실을.
그 순간, 나도 고개를 숙였다.
멍하니 창밖을 보며 마음속으로만 말했다.
“며느님… 아무도 당신 편은 아니지만, 다 듣고는 있습니다.”
가끔은 화가 난다기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나 싶은 마음이 든다.
이건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배려의 문제다.
귀에 대면 더 잘 들린다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그냥 ‘조용히 해야 하다’는 많은 사람들이 지키려고 하는 기본적인 약속을 무시한 것이다.
그렇게 통화하는 분들이 대부분 조용한 공간에서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괜찮다고 믿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 믿음이 무서운 확신이 되기 전에
누군가 옆에서 조용히 말해주면 좋겠다.
“어머님, 그거 이어폰 없이 다 들려요….”
나도 가끔 통화할 일이 있을 때
지하철에선 최대한 짧게, 조용히 말한다.
가능하면 문자를 보내고,
사정이 있어 통화를 해야 할 땐
입을 손으로 가리고, 최대한 낮게 말하려고 애쓴다.
왜냐면
나는 내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의 하루를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게 아주 기본적인, 서로에 대한 예의 아닐까.
오늘도 어디에선가
“어~ 나야! 어어~ 아냐, 나 지금 지하철이야~”
라는 말이 울려 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 고개를 숙이며 마음속으로 되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