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참 특이한 사람이다. 외골수 기질이 있고, 고집도 센 편이다. 가장 눈에 띄는 건 취향이나 생각이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십 년이 넘게 함께해도 좋아하는 음식, 입는 스타일, 말투, 심지어 감정 표현 방식까지 그대로다. 이런 고집스러움이 나는 마냥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일관성이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런데 정작 남편은 그런 자신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눈치다. 자꾸 아니라고 우기니까 말이다.
연애하던 시절을 떠올려보면,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자주 만났던 것 같다. 1년 365일 중 적어도 300일은 얼굴을 본 듯하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서로 바쁜 날이면 늦은 밤이라도 꼭 우리 집 근처로 와서 얼굴을 비췄다.
어느 날은 내가 이렇게 말했다. “당신도 할 일 있잖아. 오늘은 집에서 편히 있어.” 나도 오랜만에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책을 읽고, 강아지랑 놀며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애기! 바깥을 보세여.”
‘응? 무슨 말이지?’ 의아한 마음에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아래, 집에 있어야 할 남편이 활짝 웃으며 두 손을 번쩍 들어 나를 향해 흔들고 있었다.
“편하게 쉬고 있었는데 이러기야? 갑자기 오면 어떻게 해. 전화라도 하지.”
“전화하면 오지 말라고 할까봐 몰래 왔지. 보고 싶어서 말이야.”
화가 나지는 않았다. 그냥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애기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순간.
결혼하고 나서도 남편은 늘 “같이 같이”라는 말을 달고 산다. 내가 집 앞 편의점에 뭐 사러 가면 “같이 가야지” 하며 따라나서고, 일요일 밤이면 “에휴... 내일은 애기랑 헤어진다...”라며 한숨을 쉰다. 회사를 가기 싫다는 뜻이 아니라, 나와 떨어지기 싫다는 뜻이다.
책을 읽을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옆에서 해야지.” 하면서. 손을 잡는 것도 좋아한다. 밖에 나가면 꼭 손을 잡는다. 손이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질까 봐 그러는 걸까?
사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스킨십도 그리 즐기지 않는 나로선 가끔 부담스러울 때도 있다. "나도 혼자 있고 싶어!" 하고 외치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런 말은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다. 남편의 모든 행동이 결국 나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눈치껏,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다.
결국 내가 ‘혼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건, 언제나 내 곁에 있어주는 남편 덕분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이제는 남편이 없으면 오히려 허전하다.
남편은 종종 말한다. “나는 다른 남편들처럼 많이 못 벌어서 미안해.”
하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경제적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른 법이고, 나에게 내 남편은 누구보다 소중하고, 아름답고, 빛나는 사람이다. 건강만 지킨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평온하고 안락한 노후를 함께 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나는 남편을 믿는다. 그리고 그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