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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May 22. 2022

허공을 가로지르는 (     )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은 눈길을 끄는 재주가 있다.

멈췄던 순간들 04.

허공을 가로지르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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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을 가로지르는 (     )
 비행기, 손 인사, 구름, 꽃씨, 시선, 새, 나뭇잎, 담배 연기


허공을 가로지르는 비행기 )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길에 하늘에서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는 걸 보았다. 맑고 파란 5월 하늘 비행기가 지나간 자리에 비행운이 생겼다. 하얗고 일직선인 구름이 예뻐서 한참을 바라봤다. 지나간 자리가 저렇게 선명하고, 예쁘다니.


허공을 가로지르는 손 인사 )

비행기 표를 들고 기내에 들어와 자리에 짐을 놓고 앉아 둥그런 창가에 이마를 기댄다. 이륙 전 비행기 정비를 끝낸 정비사들이 나란히 서서 손 인사를 해줄 때 나도 소심하게 손 인사를 한다. 손 흔들어주는 것이 다정해서 그 장면을 눈에 담는다.

누군가와 만나고 헤어질 때 나도 모르게 손을 많이 흔든다. 일로 만나 처음 본 사이인데도 헤어질 때 해맑게 손 인사를 하는데, 뒤돌고 나서야 뒤늦게야 깨닫는다.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해도 되었을 텐데.


허공을 가로지르는 (  구름  )

뉴질랜드에서 보낸 시간 대부분은 누워있었다. 어디든 누워있을 만한 곳이 있었다. 호수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누워있다가 책을 읽다가 무언가를 썼다. 집에서 바다까지 걸어서 5분 남짓이었고, 바닷가에도 잔디밭이 있었다. 도서관에는 늘 몸을 반쯤 누울 수 있는 편안한 소파가 있었다.

누워서 무얼 했냐면 지나가는 것을 관찰했다. 하늘을 떠다니는 구름을 바라봤다. 뉴질랜드는 바람이 많이 부는 지역이라 그런지, 구름도 무척이나 빠르게 흘러갔다. 눈을 떼지 않고 바라봐도 처음 보았던 구름의 모양은 어느샌가 흩어지고 사라졌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  꽃씨  )

산책하다 보면 뜬금없는 곳에 핀 꽃송이를 만날 때가 있다. 꽃이 필 자리가 아닌데, 하며 꽃씨의 여정을 상상해본다. 바람에 실려 돌아다니다가 인간에게 닿았다가 나뭇잎에 잠시 앉았다가 마침내 자리 잡은 꽃씨. 가벼운 몸 하나로 떠돌다 바위틈 사이에, 아스팔트 사이에 자기 자리를 찾은 꽃씨. 발걸음을 멈춰 잠시 꽃씨의 여정을 그려보면, 함부로 한계를 그은 건 내가 아니었나, 싶다. 어디든, 어느 곳이든 꽃 피울 수 있는데. 


허공을 가로지르는 (  시선  )

글을 쓰는 아이들의 시선은 허공에 있다. 특정한 무언가를 바라보지 않는다. 아이들이 바라보는 건 자신의 경험과 생각.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을까 고민한다. 글을 쓰다가 멈추고 고개를 올린다. 왼쪽 손은 턱을 기대며 허공을 바라보고, 오른손에 연필은 무의식적으로 돌아가며 생각을 다듬고, 무언가를 떠올린다. 시선이 다시 종이로 내려가고 글씨를 채워가고, 마침표를 찍는다. 글 한 편이 완성된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것은 눈길을 끄는 재주가 있다. 걸려있는 것이 아닌, 가로지르는 것들. 멈춰있는 것이 아닌, 움직이고 마는 것들. 그러니까 끝내는 떨어지고 혹은 멀어지고 마는 것들. 가로지르는 무언가는 낙하하는 중이다. 끝이 있으므로 눈길은 꼼짝없이 붙잡힌다. 해야 할 일이 바라보는 것뿐인 몸이 된다. 이별하는 사람이 된다. 곧 지나갈 순간임을 명명히 알게 되므로.


허공을 가로지르는 새, 바람에 살랑살랑 떨어지는 나뭇잎, 누군가 내뱉은 담배 연기를 본다. 허공에는 붙잡아주는 것이 없다. 몸 하나로, 물체 하나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간다. 우아하게, 아름답게, 때로는 안간힘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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