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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un 05. 2022

지금 만나는 경험

꽃할매 이야기교실에서 할머니들을 매주 만나고 있다.

멈췄던 순간들 06.

지금 만나는 경험


꽃할매 이야기교실에서 할머니들을 매주 만나고 있다.     

벌써 여섯 번의 시간이 지났다. 첫 시간의 당혹함이 생각난다. 첫 시간이라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으로, 카드에 질문을 적어 준비해갔다. 할머니들도 보실 수 있게끔 글씨를 크게 썼다. 그런데 첫 시간에 글자를 모르는 할머니가 있음을 알았다. 당황한 나는 얼른 카드를 치우고, 말로 이어갔다. 그런데 조금 이따가 잘 들리지 않는 할머니가 있음을 알았다.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수업을 했다. 땀이 삐질삐질 났다. 나는 할머니들을 잘 몰랐다.


매주 수업에서 여러 활동을 하는데, 할머니들 대부분이 미술 활동을 처음 접하고 있음을 진행하면서 알았다. 색연필, 오일파스텔, 크레파스 등을 만지면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처음이었다.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써야 하는지 모르셨다. 다행히 옆에서 알려드리고, 도움을 드리니 금방 적응하셨고, 집중하며 그림을 그렸다. 한 사람씩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할머니들이 서로의 작품에 아낌없이 칭찬한 것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들은 칭찬만 하지 않았다. 누군가 삶이 후회된다고 말할 때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위로했다. 다른 사람이 뜬금없이 노래 부를 때, 같이 노래를 부르고, 의기소침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격려하고, 병원과 약 때문에 고민을 이야기하면, 먼저 경험한 이가 조언해주었다.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도 털어놓고, 자식들의 자랑도 실컷 했다. 나는 매번 서로를 위하는 할머니들에게서 많이 배웠다.


미술 시간에 한 할머니가 섬세한 선으로 그림을 그렸다. 나는 옆에서 감탄하며, 자식들 어릴 때 숙제를 많이 도와줬냐고 물었다.


“처음 해봐요. 아이들 소풍 갈 때 도시락을 가장 예쁘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밤을 새워 가며 도시락 싼 적은 있는데, 숙제 같은 건 도와줄 생각도 못 했어요. 괜히 내가 망칠까 봐.”


도시락을 보고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감탄했다고 덧붙이는 말에는 할머니의 자부심이 있었다. 할머니는 수십 년 가사 일을 하고, 자식들을 키우며 시간을 보냈다. 중년이 되어서야 배드민턴을 배웠고, 할아버지랑 복식으로 팀을 이루어 재밌게 살았다고 말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배드민턴을 치며, 상도 받았다고. 그러다 얼마 전에 쓰러지셨고, 커다란 수술하게 되었다. 좋아하던 운동을 못 하게 되었고, 언제든 쓰러질 수 있어 집에서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고 한다. 84살, 꽃할매 이야기교실에서 그림을 처음 그리게 되었다.


할머니는 첫 그림으로 예쁜 꽃바구니를 완성했다. 다른 할머니들은 감탄과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느 날은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리다가 다리 각도가 생각한 것만큼 나오지 않아 아쉬워했다. 사람의 형태를 그리는 게 어렵다고 말한 할머니에게 함께 보았던 ‘우정 그림책’을 선물해드렸다. 다양한 사람의 모습이 나와서 연습하기 좋을 것 같았다. 할머니는 기쁜 마음을 책과 색연필을 받으셨다. 나와 주석은 수업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토로했다. 할머니가 조금 더 일찍 재능을 발견했으면 어땠을까. 그럼 정말 훌륭하고, 멋진 화가가 되지 않았을까. 가사 일을 조금 덜 하시고, 그림을 그렸다면 다른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할머니들이 수업에 오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셨다. 두 시 수업에 한 시 반쯤 도착하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할머니도 오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시더니, 집에서 그린 그림을 보여주셨다. 꽃 그림도 있었고, 사람을 그린 그림도 있었다. 어떤 그림은 마음에 들 때까지 두, 세 장씩 그렸다.


“우리 자식들이 미술 전공인데, 자기들 재능을 나에게서 물려받은 걸 이제야 알았다고 그래요. 왜 일찍부터 그리지 않았냐고 하고요. 어버이날 땐 딸과 사위한테 선물 받아 그림을 선물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액자에 넣어둔다나 뭐라나. 딸들은 저한테 열심히 그림 그리라 그래요. 나중에 전시회 열어준다고요. 그래서 여기에 두고 간 그림도 꼭 챙겨오라고 말했어요. 첫 번째 그림이니까요. 선생님, 저는 정말 요즘 살기가 좋아요.”


할머니들의 표정이 점점 좋아지고 있음을 수업할 때마다 느끼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려운 걸 하게 될까 봐, 걱정하던 말과 얼굴이 점점 오늘은 무얼 하는지 기대하고, 즐겁게 한다. 초반에 이야기만 하면 울던 할머니는 점점 말이 많아지더니, 롤러코스터를 탔던 일화를 이야기면서 깔깔 웃는 걸 보게 되었다. 길에서 만나도 그냥 지나쳤던 할머니들은 동네에서 지나다니다가 만나면 인사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제 두 번 남은 수업에 할머니들은 끝나면 또 언제 하느냐고, 이런 프로그램을 더 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도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몰랐지만, 만나면서 많은 걸 알게 되었다. 한 분 한 분의 성함을 알게 되었고, 종교를 알게 되었고, 자식은 몇 명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결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배우자의 성격은 어떠한지 알게 되었다. 모두 자기 삶을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왔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코로나 19가 할머니들에게도 아주 치명적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젊은 사람은 인터넷과 줌으로 인해 수업도 듣고, 다른 사람과 교류할 수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정말 물리적으로 누군가를 만날 기회를 잃어버렸다. 친구들도 만나지 못했고, 가족들도 자주 만나지 못했다. 다니던 일도 그만두게 되었다. 자주 가던 시장도 뜸하게 가게 되었고, 교회도 가지 못했다. 사람을 만날 수가 없어 집에서 텔레비전만 보는 시간만 늘어갔다. 할머니들은 동네에서 모이는 시간을 소중히 생각했고,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히 대했다.


누구나 삶의 경험이 다르고, 모양 또한 다르다. 할머니들을 만나며 더 자주 느끼고 있다. 한 사람이 경험한 것이 그 사람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어떻게 내 삶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모양이 달라질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뒤늦게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발견하여 즐길 수도 있고, 일찍 발견했으나 평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숨기며 지낼 수도 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할머니가 일찍 그림을 만났어도 좋았을 테지만, 아쉬워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었다. 할머니는 가정을 꾸리고, 돌보며 자식들을 길러냈고, 20년간 배드민턴을 치며 즐거운 나날들을 보내셨다. 그러다 그림이라는 또 다른 기쁨을 지금 만났으니 지금을 즐기면 되지 않을까.


나도 서른 살인 지금 소설이라는 걸 처음 써보게 되었고, 헬스장이라는 곳을 처음 가보게 되었다. 다정한 할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지금 내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내 삶에 깊게 스며들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즐기고 싶다. 여든넷의 나는 무엇을 처음 접하게 될까. 무엇을 즐기고 있을까. 뒤늦게 배우고, 만나게 될 것을 아쉬워하기보다 무엇이 오던 양팔을 크게 벌려 환영하고 싶다.



할머니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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