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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un 25. 2022

길을 잃어야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

쓰지 못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나 자신을 알아간다.

멈췄던 순간들 08.

길을 잃어야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나. 너란 길만 걸었으니까. 오 낮엔 괜찮아 바쁘게 지낼 수 있어 밤이 오면 다시 길을 잃어 울고 울다 새벽이 되잖아 모두 사라졌어 my hope love sweet dreams 워 어떡해 워 잘해주지 말지 왜 그랬어 이제 막다른 길"


공일오비의 노래가 입가에서 흘러나온다. 초조하다는 의미다. 사랑 노래와 상관없이 길을 잃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마다 이 노래를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다. 잠시 길을 잃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어 나.이번 주에 이런 기분을 두 번 느꼈다. 종이 앞에서.


한 번은 분노 또는 용기를 주제로 써야 하는 글을 이번 주에 보내야 했다. 몇 주 내내 고민해오고, 써보며 시도했는데 잘 써지지 않았다. 이렇게 저렇게 애써봤지만 내 마음에 하나도 들지 않았다. 결국, 마감날 저녁 다른 방식의 글을 썼고, 그 글을 보냈다. 새로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막막했다. 이번 글은 괜찮을까. 완성할 수 있을까.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 속에 뱅뱅 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이번 글은 무엇을 써야 할까. 정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았다. 흰 종이 앞에서 막막함이 나를 누른다. 잠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멍하니 화면만 바라본다.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를 때 책을 읽는다. 읽고 있는 책은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몇 주 전에 사두었지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읽기를 미뤘다. 왜 쓰기에 관한 책은 읽어도 읽어도 질리지 않을까. 읽을 때마다 위안이 되고, 정신이 번쩍 들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밑줄을 긋게 만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모르는 상태가 창작력의 핵심임을 스스로 상기한다. 역설적이게도 모르는 상태는 기력과 잠재력, 그리고 작품 자체의 탄력을 형성한다. 방에 홀로 있는 작가에게 가장 진실한 즐거움 중 하나는 인물들이 뭔가 예상치 못한 일을 벌여 우리를 놀랜다는 점이다.


위 문장을 믿어보기로 한다. 소설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지만, 이 원고에도 적용될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지금 나도 무엇을 쓸 수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계속 써나간다. 망할지도 모르는 원고이지만, 또 무언가를 만들어 낼지도 모르니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백으로 시작한 글은 어떻게 끝이 날까.


끝내 완성하지 못한 원고가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 원고가 돌부리가 되어 자꾸 넘어진다. 분노와 용기라는 주제. 지금껏 완성하지 못한 원고는 수두룩했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 붙잡으면서도 완성하지 못한 건 처음이었다. 나의 부족함과 한계를 처절하게 느꼈다.


나는 일상에서 분노를 자주 느끼지 않는다. 주변에서 부당한 일을 당할 때 화가 나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세상에 일어나는 여러 화가 나는 일에 관해 쓰자니 자신이 없었다.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쓸 수 있음을 알았다. 내 분노의 방향이 어디로 향해있는지, 무엇에 화가 나고, 화가 나지 않는지 돌아보니 부끄럽기만 했다.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외면하고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화나는 일에는 우물쭈물했다. 이런 내가 화를 낼 자격이 있는가. 분노라는 주제 앞에서 백지가 내게 혼내고 있었다. 내 잘못을 꿰뚫어 보면서 큰소리 내지 않고, 가만 나를 보는 선생님 같았다. 아무것도 적을 수 없음은 그 자체로 벌이었다. 타인과 세상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삶으로는 나의 언어로 쓸 수 없다.


용기 또한 벅찬 주제였다. 난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용기 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하면 지난달 용기 내어 헬스장에 등록했던 순간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나름의 용기를 내고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지만 이런 용기에 관해 쓰기가 머쓱했다. 내가 생각하는 용기란 타인에게 손을 건네는 일이니까. 내가 내는 용기는 겨우 나를 위로하고, 나에 국한되는 일이라서 쓰지 못했다.


쓰지 못하는 것이 늘어날수록 나 자신을 알아간다. 나는 겨우 이 정도이구나. 이만큼이구나. 글을 쓰니까 보인다. 나의 연약함. 약점. 부족한 점. 한계를. 그리고 다짐한다. 언젠가는 용기에 대해서, 분노에 대해서 잘 쓰고 싶다고. 빈약한 경험이 아닌, 풍부한 언어로 글을 쓰고 싶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잘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쓸 수 있는 글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가장 좋은 글은 삶에서 나오기에.


글을 쓰는 삶이란 용기와 인내, 끈기, 공감, 열린 마음, 그리고 거절당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기꺼이 혼자 있겠다는 의지도 필요하다. 자신에게 상냥해야 하고, 가리개 없이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을 관찰하고 버텨야 하고, 절제하는 동시에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기꺼이 실패해야 한다.


다짐으로 끝나는 글은 재미없다. 재미없는 줄 알면서도, 매번 비슷한 패턴의 결말임을 알면서도 나의 글은 자주 다짐으로 끝난다. 글쓰기는 나를 반성시킨다. 반성하는 사람은 조금 더 자란다고 믿는다. 더 자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과 지금의 나 사이에는 글이 있다. 글을 쓰며 실패하고, 글을 쓰며 길을 잃는 나를 발견한다. 


길을 잃어야 탈출구를 만들 수 있다. 길을 잃고 있는 줄도 모른다면 영영 같은 길을 헤매고만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알았다면, 길을 잃었다는 걸 알았다면 멈춰 선 채 방향을 찾으면 된다. 탈출구를 만들면 된다. 길을 잃어도 그럼에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걷는다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어디로 갈지, 어떻게 끝맺을지 몰랐던 이 글 한 편처럼. 글 앞에서 길을 잃고, 글을 쓰며 길을 찾는 나처럼. 


*

-이번 글의 제목은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에서 데이비드 살레의 문장을 인용한 것을 재인용하였습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 <계속 쓰기: 나의 단어로> 

http://www.yes24.com/Product/Goods/108250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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