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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히 Jun 25. 2022

단단해지는 시간

단단해지고 있다. 조금씩 쌓여간다.

멈췄던 순간들 09.

단단해지는 시간


팔 양쪽이 두들겨 맞은 것 같다. 

분명 누구도 때리지 않았는데. 양쪽 어깨도, 가슴 윗부분도 아프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아파 더 누워있고 싶었다. 헬스장에서 가슴 운동 PT를 받았다. 분명 건강을 위해 하는 것인데 운동하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몸이 아프다.


지난주에는 하체 운동 PT를 받았다. 너무 힘들었다. 온몸에서 땀이 쫙 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나는 너무 힘든데 선생님은 ‘잘하고 있어요!’와 ‘어깨 펴고, 목 꺾이지 않게, 호흡에 신경을 쓰면서!’를 번갈아 말하면서 숫자를 세었다. 마지막 하체 운동에서 내 무릎이 꺾이면서 운동은 예상 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집에 가기 전 러닝머신을 타라는 말에 울상을 지었다. 30분 동안 러닝머신 위에서 천천히 걸으면서 마지막 남았던 힘을 쏟아부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집에 돌아갔다.


다음날 나는 웃음이 났다. 아니, 이렇게까지 아플 일이야?! 다리가 몸의 하중을 견디지 못해 자꾸 고꾸라졌다. 이튿날은 더 아팠다. PT 받기 전에 선생님께 문자를 했다.

'선생님, 저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괜찮은 건가요? 오늘 운동할 수 있을까요?'

나의 진지한 물음에 선생님은 하체 운동하면 4일은 아플 수 있다고, 정상이라고, 이따가 조심히 걸어서 헬스장에 오라고 말했다. 아아. 정상이구나. 괜찮은 거구나. 


운동과 담쌓으며 살아왔다. 땀을 흘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고, 워낙 몸치인지라 운동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지 못했다. 나는 몸치야, 운동을 좋아하지 않다고 스스로 정해놓은 프레임에 가둬두었다. 그게 편했다. 땀을 흘릴 필요도, 구태여 노력할 필요도 없었으니까.


3년 전쯤, 몸과 마음이 지친 어느 날 우연히 요가 영상을 봤다. 영상 제목이 대략 마음이 힘들 때 하는 요가였다. 영상을 틀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25분 정도 분량의 영상이었는데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내게는 무척 힘들었던 요가 시퀀스였다. 몸을 풀면서 천천히 하는 하타 요가나 인요가가 아닌 계속 몸을 움직이는 빈야사 요가였다. 나는 헉헉 대면서 따라 했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생각하면서도 어설픈 동작으로 할 수 있는 만큼 따라 했다. 중간에 끄고 싶었지만, 무슨 오기였던지 끝까지 해냈고,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였기에 땀이 났다. 마지막에 사아바사나(송장자세)로 누웠다. 지쳤지만, 기분 좋았다. 요가하는 도중에는 이게 무슨 마음이 힘들 때 하는 요가냐고 속으로 열변을 토했지만, 끝까지 하니 알았다. 요가하는 동안 나를 괴롭혔던 문제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는 것을. 몸을 움직임으로써 정신을 쉬게 했다는 것을.


이후 종종 집에서 요가를 했다. 요가 매트를 사고, 폼롤러를 사고 유튜브에 있는 영상을 틀었다. 요가소년과 에일린 선생님의 영상 중 그날그날에 따라 마음에 드는 영상으로 수련했다. 어떤 달은 매일매일 꾸준히 했고, 어떤 달은 일주일에 두어 번, 어떤 달은 하나도 못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몸 어딘가가 불편할 때, 마음이 심란할 때 요가 매트를 폈다. 땀을 흘리는 날도, 편안한 마음으로 하는 날도 있었지만 어떤 날이든 요가를 하고 나면 개운해졌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내 몸에 관심을 주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요가를 좋아했지만, 꾸준히 하지 않았기에 체력은 제로였다. 무슨 일을 하든 쉽게 지쳤다.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 집중하는 일은 체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작가들은 나름의 운동을 하고 있었다. 술을 마시고, 밤새며 글을 쓰는 작가이기보다 아침에 일어나 맑은 정신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수였다. 규칙적인 운동. 체력을 기르고 싶었다. 하루에 적어도 3, 4시간 앉아서 글을 쓸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싶었다. 물론 집안일도 하고, 달래와 산책도 하고, 외부 일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운동도 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했다. 소파에 널브러지며 힘들어- 하는 시간을 줄이고 싶었다.


체력을 기르기 위해 헬스장에 가고 싶었는데 자신이 없었다. 집 근처에 새로운 헬스장이 생겼다길래 짝꿍에게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생각했던 어두운 헬스장과 다르게 아주 밝았다. 무엇보다 즐겁고, 유쾌하게 상담해주었다. (운동 목적을 체력 증진이라고 했는데, 내 인바디 검사지를 보시더니 다이어트도 추가해주었다.) 여자 트레이너 선생님이 계셔서 마음의 부담이 덜해졌다. PT(Personal Training)를 등록했다.


운동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10회에 걸친 PT도 막바지에 다다랐다. 그래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었느냐 하면 아니다. 몸무게는 1kg밖에 빠지지 않았고, 부끄럽지만 체질량 지수는 처음보다 조금 더 늘었다. 처음 다짐했던 마음가짐과 다르게 매일 헬스장에 들르지 않았다. PT를 받는 일주일에 이틀은 헬스장에 나갔다. 그럼에도 변화는 있었다. 먹는 것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디저트와 젤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거의 먹지 않았다. 단 간식들과 자극적인 음식이 저절로 멀어졌다. 헬스장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조금씩 운동이 내 삶으로 스며들고 있었고, 운동 가기 싫다면서 갔다 오는 나를 발견했다. 무엇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버겁지 않았다. 한바탕 몸이 아프고 나면 그 부위가 조금 딴딴해졌음을 느꼈다.


청소년 친구들이 지난 시간에 쓴 글을 옮겨 적다가 공통점을 발견했다. 자신들이 힘겨워했던 순간에 관해 적었는데 그 경험을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었다. 손목에 염증이 생겼음에도 독주회를 끝낸 경험, 드럼을 치기 싫어 울며 소리쳤다가 주말마다 연습하면서 회피하지 않고 돌파한 경험, 열아홉인 지금 혼란스럽지만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하는 경험. 모든 성장에는 아프면서 단단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여전히 운동 후에 아픈 게 싫다. 그렇지만 온몸이 아플 때마다 근육이 붙고 있구나, 건강해지고 있구나를 느낀다. 단단해지고 있다. 건강한 몸과 튼튼한 체력은 뚝딱 생기는 것이 아님을 배운다. 찬찬히 붙는다. 조금씩 쌓여간다. 괴로웠던 시간이 조금 더 나은 내일을 만든다. 운동이든, 음악이든, 글쓰기이든. 오늘은 겨우 이 정도이지만, 돌아보면 이만큼이나 왔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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